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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31] 기후변화 부정하는 글로벌 기업의 두 얼굴(191104/주간경향 제1350호)

미국의 다국적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의 재판이 시작된 10월 22일(현지시간) 미국 시민들이 뉴욕 맨해튼 법원 앞에서 ‘#엑손은알았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엑손모빌이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잠재적 비용에 관해 투자자와 주주 등을 속여 재산상 피해를 입혔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EPA연합뉴스


‘담배 피해소송’에 비견되는 ‘기후변화 피해소송’의 역사적인 재판이 지난 10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법원에서 시작됐다. 원고는 피해자들을 대신한 뉴욕 검찰총장, 피고는 미국의 다국적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이다. 뉴욕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엑손모빌이 잠재적인 기후변화 비용을 호도해 손해를 봤다는 주주와 투자자들을 대신해 엑손모빌을 기소했다. 주주들의 피해 추정액수는 4억1600만~11억60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엑손모빌이 기후변화 규제에 책임이 있는지, 투자자들에게 회사가 더 가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후변화 규제비용을 과소평가했는지 여부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전례없는 재판이다 보니 소송 당사자와 환경운동가 모두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원고가 이길 경우 기후변화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명분을 얻게 되고, 엑손모빌을 비롯한 에너지기업들은 기후변화 규제비용으로 거액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강조해온 환경운동가들로서는 기후변화를 막을 노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재판으로 앞에서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단체나 인물에 거액의 재정지원을 해온 엑손모빌을 비롯한 에너지기업의 두 얼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 구글이 기후변화 부정 단체에 거액을 후원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엑손모빌, 담배소송 전술로 기후변화 호도

엑손모빌 재판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10월 21일, 미국 하버드대·조지메이슨대와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미국을 호도하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엑손모빌이 기후변화에 대해 어떻게 미국인들을 정교하게 호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를 보면 과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배출이 잠재적으로 기후온난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엑손모빌도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의 잠재적 위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1977년 내부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엑손모빌은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하거나 국민들에게 알리는 대신 허위정보 활동에 수백만 달러를 썼다. 1980~90년대에는 본격적인 호도작업에 들어갔고, 그 후에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데 모든 물리력을 동원했다. 엑손모빌은 이를 위해 가짜 전문가를 동원하거나,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는 결함투성이의 주장을 펴거나, 확실성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기준을 요구하거나, 원하는 결론을 지지하는 자료를 선별하거나, 음모론을 동원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담배회사 전술에 의지해 화석연료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똑같이 했다. 대중을 혼란에 빠뜨리고 생명을 구할 행동을 지연시키는 데 수억 달러를 허비했다. 그들이 남긴 유산은 죽음과 파괴,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의 부당함이다. 거대 석유회사는 새로운 거대 담배회사다.”

과거 글로벌 담배기업은 흡연이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감추다가 흡연 피해자와 가족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소송을 당했다. 연구진은 담배소송처럼 화석연료를 활용하는 에너지기업들도 기후변화의 위험과 비용을 감추기 위해 담배회사들이 활용한 전술을 똑같이 활용해온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엑손모빌은 기후변화에 따른 규제를 피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통한 직접 로비, 싱크탱크나 이익단체 재정지원, 페이스북 광고를 통한 홍보, 의원 후원금을 통한 의회 로비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엑손모빌이 지난 5월 말 펴낸 ‘후원금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10개 단체에 77만2500 달러를 지원했다. 다행히도 2017년 지원금(150만 달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엑손모빌이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68개 싱크탱크에 지원한 돈은 3700만 달러가 넘는다. 대표적인 단체는 미 상공회의소, 미국기업연구소(AEI), 맨해튼연구소다.

미국의 비영리 과학옹호단체인 ‘참여과학자모임’의 엘리엇 네긴이 지난 10월 21일 비영리 진보매체 <트루스아웃>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엑손모빌은 2014년에 향후 5년간 미 상공회의소가 추진하는 2억5000만 달러 모금행사에 500만 달러를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 엑손모빌은 모금행사에 35만 달러를 비롯해 상공회의소에 기부한 액수는 36만5000 달러였다. 미 상공회의소는 2년 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행이 미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과장된 보고서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의 주요 근거로 활용했다.

지난 80년간 자유시장 신봉의 최전선에 서온 싱크탱크 AEI는 엑손모빌로부터 여느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단체보다도 많은 돈을 받았다. 지난해 16만 달러를 받았지만 1998년 이래 받은 금액은 465만 달러였다. 이는 미 상공회의소(438만 달러)보다도 많다. 이 연구소의 대표적인 기후변화 부정론자는 벤저민 자이커다. 그는 뉴욕 검찰총장의 엑손모빌 소송에 대해 “인기 없는 목표를 잡아 어떻게 해서라도 유죄를 선고하려고 한다”면서 소송 자체가 출세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있는 맨해튼연구소는 엑손모빌로부터 지난해 7만5000 달러를 받았다. 1998년부터 받은 돈은 132만여 달러에 이른다. 이 연구소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반대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풍력이나 태양발전, 전기자동차에 대한 연방정부의 보조금 중단을 수시로 요구하고 있다.

미 의회도 엑손모빌에 주요 로비 대상이었다. 엑손모빌이 2018년 미 중간선거 기간에 쓴 돈은 165만 달러다. 이 가운데 3분의 2에 이르는 110만 달러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후보 189명에게 지원됐다. 또 지난해 의원 로비자금으로 1115만 달러를 썼는데, 이는 다른 에너지기업보다도 많은 액수다. 엑손모빌이 의회에 로비를 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탄소세 도입 방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엑손모빌은 2009년 탄소세 도입을 찬성한다고 선언했으며, 지난해에는 탄소세 도입 지지 단체에 2년간 1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홍보 및 로비자금으로도 거액을 썼다. 영국의 환경 관련 비영리단체 ‘인플루언스맵’이 지난 3월 펴낸 보고서를 보면 2015년 12월 파리협약 체결 후 엑손모빌, 쉘, 쉐브론, BP, 토탈 등 세계 5대 에너지기업은 홍보 및 로비자금으로 10억 달러를 썼다. 이 가운데 화석연료 사용 및 확대를 위해 쓴 비용은 1년간 약 2억 달러다. 엑손모빌은 4100만 달러로, BP(5300만 달러)와 쉘(4900만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썼다.

기후변화 부정 단체에 거액을 후원한 구글 본사의 로고. AP연합뉴스

정보기업 구글은 왜 후원했나

<가디언>은 10월 11일 구글이 기후변화 부정에 앞장서온 악명 높은 보수 싱크탱크에 거액을 기부해왔다고 보도했다. 화석연료를 수입원으로 하는 에너지기업이나 연료로 사용하는 자동차기업도 아닌 IT기업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기 위해 활동하는 싱크탱크에 재정지원을 하는 이유는 뭘까? 구글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6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하자 실망감을 표현하는 등 기후변화에 관한 정치적 행동을 지지한다고 주장해온 터였다.

구글이 기부한 대표적인 싱크탱크는 경쟁기업연구소(CEI), 국가정책네트워크(SPN), 케이토(CATO)연구소, 메르카투스센터, AEI, 헤리티지재단 등 10여곳이다. 구글이 후원하는 기업이 수백 개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숫자는 별로 안 되지만 모두 보수성향이 짙은 단체들이다. 특히 이들 가운데 SPN, 케이토연구소, 메르카투스센터는 기후변화 부정자의 ‘큰손’ 역할을 해온 미국 대기업 코크인더스트리즈가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

CEI는 트럼프 행정부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와 각종 환경규제 철폐에 앞장서왔다. SPN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싱크탱크로, 미 보수 싱크탱크들의 상부조직으로 보면 된다. 그 산하에는 10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비난한 하틀랜드연구소가 있다. <가디언>은 SPN 회원들이 최근 ‘기후 약속’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우리 자연환경은 나아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없다’고 명시했다고 전했다.

구글 대변인은 <가디언>에 “우리는 기후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조직을 후원하는 유일한 기업이 아니다”라며 정치영역 전체에 걸쳐 강한 기술정책을 옹호하는 단체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구글은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했으며, 201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기후행동 정상회의를 후원하는 등 친환경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글 내 다른 인사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구글과 가까운 관계자는 <가디언>에 후원하는 목적은 보수 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 기관들이 옹호하는 규제완화 아젠다에 대한 재정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CEI에 대한 후원 결정을 잘 아는 한 정보원은 “기술 규제와 관련해서는 구글은 할 수만 있다면 우군을 찾아야 하고, 내 생각에 구글은 누구를 지원할 것인가 리트머스 시험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대 후원 기업은 코크인더스트리즈

지난 8월 23일 미국의 대기업 코크인더스트리즈의 형제 창립자 중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7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형 찰스와 함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사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코크 형제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미 공화당을 비롯한 우익 조직의 최대 후원자였다. <커먼드림즈>에 따르면 코크 형제가 1970년대부터 감세와 규제완화 등 우익 정치조직을 위해 후원한 액수는 최소 1억 달러에 이른다.

이들이 관심을 가졌던 또 하나가 기후변화 부정론이다. 그는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조직과 단체의 ‘최대 후원자’였다.

기후변화 부정자들의 최대 후원자인 미국 대기업 코크인더스트리즈 설립자인 데이비드 코크(왼쪽)와 찰스 코크. 동생 데이비드는 지난 8월 23일 사망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크랜드: 코크인더스트리즈의 비사와 미국에서의 기업권력>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레너드는 이날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가 시행될 경우 사업상 수조 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고 1970년대부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구를 만들어 로비와 싱크탱크, 정치자금 후원 등을 적극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탄생한 조직이 2004년 ‘번영을 위한 미국인’(AFP)이다. AFP는 코크 형제의 정치적 옹호기구이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단체 중 하나다. 특히 2009년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티파티 운동’을 정치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입법 저지 집회에 참여하거나 코크인더스트리즈에 반대할 것 같은 의원들을 찾아가 로비활동을 벌였다. 코크 형제는 위에서 언급한 SPN, 케이토연구소, 메르카투스센터 같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데 앞장서온 싱크탱크를 적극 후원해왔다.

‘기후변화 부정’의 최대 후원자인 그가 사망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미 원주민 활동가 타라 후스카는 트위터에 “그는 기후변화 원인을 제공하면서도 기후변화 부정자를 후원했다”고 썼다. <허핑턴포스트> 환경담당 기자 알렉산더 카우프먼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는 엄청난 재산을 기후변화 부정에 썼다”면서 “그는 아마존과 북극이 화재에 휩싸여 있을 때 죽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인터셉트>의 메흐디 하산은 트위터에 “코크는 단기적으로는 부와 자선활동, 우익 조직 발전을 위한 활동으로 기억되겠지만 기후변화 부정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장기적인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