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지난 8월 3일(현지시간)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으로 22명이 사망한 사건 현장인 미국 텍사스주 엘파소의 한 월마트 주차장에서 수사를 위해 차로 이동하고 있다. FBI가 정보원을 포섭해 극우단체를 사찰했다는 지난 10월 20일(현지시간) <인터셉트> 보도에 따라 인종주의나 극우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FBI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 AFP연합뉴스
“저격수 기술을 가르쳐 달라.”
시작은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지인이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가 이후 6년간 미국 연방수사국(FBI) 정보원(프락치)으로 활동하게 한 올가미가 될 줄 몰랐다.
미 육군 최고 저격병으로 복무하던 크리스 스티븐스는 2012년 6월 어느 날, 군 입대 전 10대 때 알게 된 안젤로 술타나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다. 술타나는 스티븐스가 마약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참석한 ‘익명의 술 중독자, 익명의 마약 중독자’ 모임에서 만났다. 스티븐스는 그를 키가 크고, 말이 많고, 공격적인 사람으로 기억했다. 술타나는 메시지를 보냈을 당시 우익단체인 ‘북부캘리포니아밀리셔’ 회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술타나의 메시지를 받은 스티븐스는 그가 어떻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됐는지 궁금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저격수 대회 관련 내용이나 육군이 전한 자신에 관한 소식을 그가 봤을 것으로 짐작했다.
테러 가능성 신고하자 “정보원 돼 달라”
스티븐스는 술타나의 제안이 우려됐다. 그가 1986년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븐스는 FBI에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겼다. FBI의 국내 테러담당 요원이 연락해왔다. 그는 “FBI 정보원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술타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술타나가 하는 말을 보고해 달라는 것이었다. FBI가 스티븐스에게 접근한 방법은 보통의 경우와 달랐다. 과거 드러난 FBI 정보원들은 대부분 범죄혐의가 있었다. FBI는 이들의 범죄기록을 없애주는 조건으로 정보원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스티븐스의 경우 그가 FBI에 신고하자 오히려 그에게 정보원이 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미국 극우주의 단체를 6년간 사찰했다고 주장하는 전 FBI 정보원 크리스 스티븐스. / <인터셉트> 웹사이트 캡처
스티븐스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스티븐스는 그 후 몇 달 동안 술타나의 집에서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저격수 총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러고는 술타나가 요구하는 저격수 훈련과 소지한 총에 관한 정보를 FBI에 넘겨줬다. 술타나는 총기 소지 혐의로 FBI에 체포돼 2014년 4월 기소됐다. 술타나 페이스북에는 그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글이 있었다. “그것이 싸움이 아니라면 내가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끝내기 위해 뭐든 할 것이다.” 결국 술타나는 총기 소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보호관찰 5년을 받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FBI가 스티븐스에게 뚜렷한 이유 없이 그 단체를 계속 감시해 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2014년 7월 어느 날이었다. 그 즈음 스티븐스는 등 부상으로 불명예 제대한 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었다. FBI에서 자신을 관리하는 매튜 스탠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술타나와 관련된 그 조직에 대한 조사를 돕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올 수 있느냐고 했다. 망설였다.
하지만 스탠저가 ‘조국을 지키는 데 도와달라’며 그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바람에 넘어갔다. 이후 4년간 스티븐스는 그 단체의 모임과 훈련에 참석해 참석자와 장소를 FBI에 보고했다. 약 6년간의 FBI 정보원 활동 동안 그는 모임이나 훈련에 20차례 정도 참가했으며, 그 대가로 약 3만 달러를 받았다.
스티븐스는 정보원으로 활동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그 단체 회원 중 일부는 정신적 장애가 있었고, 인종차별주의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자신 앞에서 범죄를 범하는 이를 전혀 보지 못했다.
스티븐스는 스탠저에게 물었다. “이 자리에 나보다 더 적당하고 자격을 갖춘 연방요원들이 있을 텐데, 왜 그들 대신 나에게 이 일을 하게 하는가.” 스탠저의 답은 이랬다. “당신을 활용하면 불필요한 요식을 피할 수 있다.” 스티븐스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불필요한 요식은 내가 정부 일을 하면서 배운 대로 이유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들은 왜 그 요식을 따르지 않는 거지? 그는 내가 정당한 이유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스티븐스는 FBI 정보원 일을 한 지 6년이 지난 지난해 그만뒀다. 그 후에도 그는 정보원으로 활동해 달라는 FBI의 끊임없는 요구를 받아왔다. 심지어 자기 인생에서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FBI 정보원이 아닐까 여길 정도로 민감해지기도 했다. 그는 스탠저에게 자신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을 사찰한 것처럼 FBI가 그를 사찰하는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스탠저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8개월 동안 FBI는 당신의 삶에 아무도 배치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우리는 당신을 사찰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FBI와 결별한 뒤 스티븐스는 미국을 떠나 많지 않은 군인연금에 의존해 세계를 여행 중이다.
스티븐스의 이야기를 지난 10월 20일(현지시간) 전한 탐사보도 전문 온라인 매체 <인터셉트>는 그가 FBI 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은 스탠저가 2018년 6월 보낸 e메일 내용(“당신이 조직과 군과 국가를 위해 한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다”)과 퇴역한 미 육군 장교를 통해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스티븐스가 남긴 말 한마디에 FBI 정보원이 된 그의 회한이 녹아 있다.
“나는 그저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사람들의 삶 속으로 침투해 그들의 친구가 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인간 녹음기에 불과했다.”
‘이데올로기 사찰 않는다’는 원칙 위배
스티븐스 이야기는 FBI가 정보원을 어떻게 포섭해 활동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드문 사례다. FBI는 스티븐스가 정보원이라는 <인터셉트>의 주장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NCND)’는 오랜 방침 때문이다. FBI가 스티븐스를 정보원으로 포섭해 6년간 우익단체를 사찰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잠재적인 테러를 뿌리 뽑기 위한 목적으로 무슬림을 대상으로 사찰해 논란이 됐음에도 연방정부 차원의 민간인 사찰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무엇보다도 스티븐스 사례는 연방기관은 인종차별이나 극우주의 등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미국인을 조사하지 않는다는 FBI의 기존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인터셉트>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지난 7월 23일 미 상원 법사위원회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초점은 폭력이다. 우리 FBI는 아무리 혐오감을 주더라도 이데올로기를 조사하지 않는다. 어떠한 극단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가 폭력으로 바뀔 때 우리는 그것을 제압한다.”
지난 8월 3일 미 텍사스주 엘파소의 월마트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의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극우주의자들의 테러 저지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도 법무부나 FBI는 극우단체의 국내 테러 위협에 대해 수사할 적절한 권한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스티븐스의 극우단체 침투는 FBI가 이데올로기에 의거해 시민을 조사할 때 정보원을 활용할 자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FBI 규정에는 허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인터셉트>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정보청구 소송으로 입수한 FBI 비밀규정 ‘국내 조사 및 작전 가이드(DIOG)’ 2011년판을 2017년 1월에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FBI 요원이 어떤 단체에 침투하거나 비밀요원을 활용해 정보를 얻으려면 책임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승인을 얻으려면 FBI는 반드시 ‘근거’나 혐의자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실적 기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그 활동이 정보원을 활용한 것이라면 책임자의 승인이나 근거가 필요 없다. 이는 FBI가 사실상 어떠한 이유로도 미국인을 조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월마트 총격사건 전후 미국이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수준의 국제 테러조직이나 국내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은 없었다. 그럼에도 레이 국장은 지난 7월 상원 법사위에서 지하디스트에 영향을 받은 폭력행위가 미국의 최대 테러 위협으로 남아있다면서 지난 9개월 동안 국내에서 체포한 테러 용의자(100명)는 대부분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말했다.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지난 8월 FBI에 확인한 결과 그 숫자는 90명이었다. FBI 대변인은 90이라는 숫자는 보도자료로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 매체가 자체 분석한 결과 국내 테러활동과 관련해 체포된 이는 1명뿐이었다. 결국 FBI는 스티븐스와 같은 정보원을 활용해 테러 용의자를 체포했던 것이다.
앞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인종에 바탕한 프로파일링을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FBI 내부 규정에 따르면 FBI는 인종주의 프로파일링 관행을 사실상 유지해왔다. 오히려 인종·민족·국적·종교에 기반해 조사할 상당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16년 대통령 선거유세 때부터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이나 ‘범죄자’로 부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사실상 강화됐다. FBI가 트럼프의 지지자인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 위해 국내 테러 위협 범주를 11개에서 4개로 축소하면서 백인우월주의자 폭력을 ‘인종적인 동기에 의한 폭력적인 극단주의’ 범주에 포함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FBI는 월마트 총격사건 이후 극우주의자들의 테러행위에 대응하라는 여론에 힘입어 오히려 대테러 활동 관련 권한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해 비판받고 있다. 전 FBI 비밀요원이었던 마이클 거먼은 <인터셉트>에 “FBI는 이미 백인우월주의자 폭력에 대처할 수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서 “새 권한을 가지려는 것보다 백인우월주의자 폭력에 대한 조사와 기소를 후순위로 한 오랜 법무부의 정책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티븐스도 “그들은 이미 누구의 집이든 들어가 정보를 모을 수 있는 정보원을 전국적으로 가지고 있어 더 이상의 권력은 필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권력을 원한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무슬림 테러 방지를 위한 FBI 함정수사에 동원됐던 전 정보원 크레이그 몬테일. / <인터셉트> 웹사이트 캡처
‘오퍼레이션 플렉스’와 크레이그 몬테일
9·11 이후 FBI는 정기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찰을 해왔다. FBI가 단지 종교기관 가입이라는 이유로 무슬림을 사찰하는 데 동원한 방법이 정보원을 활용한 함정수사다. ‘크레이그 몬테일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몬테일은 가짜수표 사용 혐의로 복역하고 출소한 뒤 FBI에 포섭됐다. 그는 무슬림으로 개종한 프랑스계 시리아인 파루크 알아지즈로 가장해 2006~2007년 약 15개월간 남부캘리포니아 지역의 무슬림 공동체에 침투했다.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플렉스’였다. 하지만 그는 무슬림 젊은이를 상대로 테러를 부추기다 오히려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FBI에 보고되는 해프닝 때문에 신분이 들통났다.
몬테일은 FBI 정보원으로 활동한 사실을 2009년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밝혀 미국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또 은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무슬림 여성과 성관계를 하도록 지시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FBI는 몬테일 사건으로 2011년 ACLU 등으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했지만 이듬해 법원은 국가안보 기밀유출을 우려해 기각했다. 몬테일은 FBI 정보원 경력을 활용해 FBI 사건의 피고 측 변호인 편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 사실이 2015년 5월 <인터셉트>의 폭로로 드러난 바 있다. 그는 정보원 활동 대가로 모두 17만7000달러를 받았다.
스티븐스 이야기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크레이그 몬테일 사건과 비교하면 파괴력은 작다. 하지만 FBI가 정보원을 활용해 백인우월주의자나 극우단체 같은 이데올로기 집단을 대상으로 사찰을 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지금도 1만5000명이 넘는 FBI 정보원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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