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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33]거대자본 탐욕이 산림파괴의 주범(191118/주간경향 1352호)

20년 전,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에린 브로코비치>는 평범한 로펌 직원이 부도덕한 대기업과 법정소송을 벌인 실제사건에 바탕을 둔 영화다.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기업의 공장에서 유출하는 크롬 성분이 수질을 오염시켜 힝클리 마을 주민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조사와 주민 서명을 받아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 결국 1996년 법원은 그 대기업에 미 법정 사상 최고액인 3억3300만 달러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그 기업이 바로 해마다 캘리포니아 산불의 주범으로 꼽히는 공익회사 ‘퍼시픽가스&전기(PG&E)’다.

11월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파울라의 ‘마리아 파이어’ 산불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산불의 주범은 550여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미 최대 공익회사 ‘퍼시픽가스&전기(PG&E)’로, 올해 초 파산을 신청하면서도 거액의 로비자금을 정치권 등에 지출해 ‘도덕적 해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 AFP연합뉴스


올해 8월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는 거대자본에 의해 급등하는 집값으로 신음하는 세계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웨덴 다큐멘터리 <푸시: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가 공개됐다. 다큐에는 금융위기를 기회로 싼 부동산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수리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는 회사가 나온다. 바로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과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에도 PG&E와 블랙스톤이 등장한다. 늘 확인하는 것이지만 대재앙 뒤에는 거대자본의 탐욕과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자리하고 있다. 돈이 된다면 일반인의 삶이나 인권, 환경파괴 등에 개의치 않는 것이 그들의 실체다. 앞에서는 주주의 가치와 사회적 책무를 내세우면서 뒤로는 경영자 보상금에 눈이 멀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얻기 위해 무차별 로비를 벌이는 것이다.

파산 선언 후에도 로비 벌인 PG&E

해마다 캘리포니아 산불이 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업이 PG&E다. 캘리포니아 550여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미국 최대의 공익회사다. 산불 주범인 이 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다시 올랐다. <카운터펀치>는 11월 4일(현지시간) 올해 1월 기업 재정비를 위해 파산을 선언한 PG&E가 주 의회와 규제기구인 캘리포니아 공익사업위원회(PUC)를 상대로 거액의 로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PG&E가 로비를 한 이유는 주 법안 ‘AB 1054’ 통과를 위해서였다. 비정부기구 ‘푸드&워터워치’가 “공익사업을 운영하는 투자자를 위한 광범위한 구제금융”이라고 꼬집을 만큼 자본가를 위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환경운동가와 공익단체들의 반대에도 지난 7월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을 통과해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지사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PG&E는 이 법안 통과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만 87만여 달러를 로비자금으로 썼다. 캘리포니아 지역방송 ABC10은 PG&E가 2010년 8명이 숨진 샌브루노 송유관 폭발사고와 관련해 6개의 중대범죄 혐의로 유죄선고와 벌금 300만 달러를 부과받은 뒤에도 정치인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후원했다고 전했다. 특히 뉴섬 주지사는 20만 달러 이상을, 민주·공화당은 각각 5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 지난해 중간선거 때 후원금을 받은 주의원은 98명, 액수는 54만 달러가 넘었다.

유죄선고를 받은 중범죄자가 선거자금을 지원하거나, 정치인이 이를 받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지만 PG&E는 올해 1월 29일 연방 파산법원에 기업재정비를 신청한 터였다. 파산 선언을 하고도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셈이다. 바로 전날인 1월 28일에는 캘리포니아 PUC가 기업에 대한 신용 한도액을 60억 달러 확대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소비자 보호단체 컨슈머워치독은 “전례없는 투표가 PG&E를 파산절차에 들어가는 걸 쉽게 해주고, 산불 피해자와 납세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면서 PUC에 결정 취소를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더욱이 이 회사 변호인은 지난 1월 31일 소송에 연루된 건수가 750건에 이른다며 대부분이 지난 몇 년간 캘리포니아주를 황폐화시킨 산불에 관련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터셉트>도 11월 5일 PG&E의 로비 사실을 전하면서 “2017년 10월 텁스 산불과 2018년 11월 캠프파이어 산불에 책임이 있는 PG&E가 올해 1월 파산을 신청한 것은 산불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술책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푸드&워터워치 캘리포니아의 알렉산드라 내기 사무국장은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 시즌이 더 길어지고, 치명적이고, 파괴적임에 따라 희생자를 위한 기금은 필요한데도 납세자가 아닌 PG&E 같은 기업이 이득을 챙긴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11월 3일 사설에서 PG&E 파산 신청을 계기로 새로운 소유 구조를 갖춘 책임있는 전력 공급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정부 인수를 통한 공영화 필요성을 제시했다.

올해 상반기 PG&E의 로비자금은 2018년 전체(958만 달러)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정치권 로비 등 낡은 오랜 관행 탓에 20여 년 전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운 교훈을 잊고 있다는 것이 PG&E의 현실이다. 산불 피해는 삶의 터전이 파괴되거나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고충을 겪는 소비자의 몫일 뿐이다.

마존 산림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뉴욕 본사/ 위키피디아

세계 산림파괴 최대 주범 ‘블랙록’

<지구를 위한 다이어트 혁명>을 쓴 미국 작가 애나 라페는 지난 9월 <애틀랜틱>에 소수 거대자본이 장악한 아마존의 농업산업과 관련해 기고했다. 라페는 미국의 아마존 보호 비영리기구(NPO) ‘아마존워치’의 보고서를 인용해 “거대 은행과 대규모 투자회사들은 융자와 보증, 주식투자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브라질 아마존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브라질의 대표적인 성장 산업은 쇠고기 및 대두다. 브라질의 전 세계 쇠고기 및 대두 수출 점유율은 20%나 된다. 하지만 브라질의 열대우림 파괴 원인의 80%가 목장 탓이다. 대두 수출 시장이 성장하면 대두를 생산할 땅이 그만큼 필요하게 돼 아마존 열대우림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아마존워치에 따르면 브라질의 대두 거래는 미 곡물거래업체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와 번지가 장악하고 있다. 두 회사의 대주주는 뱅가드, 스테이트팜, 블랙록, 스테이트스트리트, T로프라이스 같은 세계적인 투자사들이다. 이들이 두 회사에 투자한 금액은 90억 달러가 넘는다. 또한 세계 곡물거래의 양대 산맥인 카길(미국)과 루이드레이프스(프랑스)의 주식은 BNP파리바, JP모건체이스, 바클레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이 가지고 있다. 이 거대 은행들은 각각 10억 달러 이상의 융자를 제공하고 있다. 브라질의 주요 쇠고기 수출업체들은 캐피털그룹, 블랙록, 피델리티인베스트먼츠, 뱅가드 등이 대주주다. 산탄데르와 JP모건체이스, 바클레이스 같은 은행들은 쇠고기 수출업체에 지난 5년 동안 12억 달러 상당의 보증을 섰다.

거대 은행과 대규모 투자회사들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책임투자 시대를 맞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을 준수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지구의친구들, 아마존워치 등 NPO들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세계 산림파괴의 최대 투자자(주범)로 지목했다. 블랙록의 운용자산은 2019년 현재 6조9600억 달러에 이른다. 이들이 2014~2018년 재무자료를 분석해 지난 8월 30일 펴낸 보고서 ‘블랙록의 거대한 산림파괴 문제’를 보면 산림파괴 위험을 안고 있는 25개 글로벌 기업의 최대주주 3곳 중 한 곳이 블랙록이었다. 블랙록은 지난 5년 동안 대두, 쇠고기, 팜유, 고무, 목재, 펄프(종이)에 대한 투자액을 5억 달러 이상 늘려왔다. 앞서 8월 초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산림파괴와 토지 남용 관행이 온실가스 배출의 2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보고서의 책임 필자이자 미국 지구의친구들의 국제산림프로그램 담당자인 제프 코넌트는 “블랙록의 투자는 아마존 화재와 전 세계적인 산림파괴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블랙록은 167개 산림파괴 위험 기업 가운데 61개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억 달러나 된다. 보고서는 또 “블랙록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에 맞서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산림파괴 투자를 늘리고 있다”면서 “노르웨이국부펀드의 경우 블랙록이 투자하는 회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아마존 화재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는 지난 8월 초 펴낸 보고서에서 블랙록은 지난 10년간 화석연료 투자로 900억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고 지적했다. 블랙록은 이 보고서를 보도한 알자지라 방송에 보낸 성명에서 “자산운용회사와 수탁자로서의 우리의 의무는 고객의 자산을 그들의 투자 우선순위에 따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블랙스톤’은 아마존 파괴 기업 투자

아마존 화재가 한창이던 지난 8월 말 <인터셉트>는 아마존 산림파괴의 배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재정 후원자인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최고경영자(CEO)가 있다고 보도했다. 블랙스톤은 자산이 545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다. 보도에 따르면 블랙스톤은 아마존 산림파괴의 원인이 되는 고속도로(BR-163) 건설 및 항만 운영을 주도하는 브라질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테라 앤 아쿠아 MODIS 위성이 지난 8월 15~22일 촬영해 합성한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 사진. / NASA 웹사이트


BR-163 고속도로는 아마존 남북을 관통하는 길이 4476㎞로, 아마존 산림을 개간해 곡물과 대두 생산 및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기반시설이다. 브라질 파라주 미리티투바에 있는 운송터미널은 고물 및 대두 생산자가 선박을 이용해 생산물을 대형 항구로 운송해 세계로 퍼져나가게 하는 시설이다. 이 항만을 운영하는 회사가 이드로비아스 두 브라질. 블랙스톤은 이 회사 지분 9.3%를 보유하고 있다. 블랙스톤이 투자한 또다른 회사 파트리아 인베스트멘토스는 이드로비아스의 지분을 55.8%나 가지고 있다.

이 고속도로와 항만은 오랫동안 브라질에서 논란이 돼 왔다. 아마존 정글지역에서 농장으로 광범위한 운송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산림파괴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 탓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17년 9월에 2004년과 2013년 사이 2005년 제외하고는 대체로 아마존 산림파괴가 줄어들었는데, BR-163 부근 지역만 산림파괴가 증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블랙스톤 CEO 슈워츠먼은 재산이 2019년 기준 172억 달러로, <포브스> 선정 세계 갑부 순위에서 100위에 오를 정도로 갑부다. 2018년 연봉은 2017년(7억8600만 달러)보다 줄었지만 5억6800억 달러나 됐다. 그는 지난해 매코넬의 정치자금 단체(슈퍼팩)에 800만 달러를 후원했다. 트럼프의 절친이자 고문인 슈워츠먼은 공화당의 세금감면 통과를 위해 ‘10만 달러 식사 행사’를 주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최고 구간의 세금을 39.6%에서 37%로 감면했다.

블랙스톤 측은 이들 회사에 대한 투자는 세계은행 자매회사인 국제금융공사(IFC)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인터셉트>에 밝혔다. 블랙스톤 대변인은 “이드로비아스는 최고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에 맞춰 일했으며, IFC로부터 감사를 받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IFC는 환경파괴적인 프로젝트에 투자를 해와 논란을 빚기도 했다. 블랙스톤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IFC는 고속도로 건설이 채굴이나 벌채 등 산림파괴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문제점보다 수로를 통한 운송이 덜 탄소집약적인 방법이라는 등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데 주력해왔다고 <인터셉트>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