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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37] 미국의 정권타도 공작, 다음 대상은 니카라과?(191216/주간경향 1356호)

트럼프, 국가안보 위협 이유로 행정명령 연장 등 압박 강화…트럼프판 ‘콘도르 작전’ 재시동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니카라과·쿠바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베네수엘라가 자유를 찾으면 쿠바·니카라과도 자유를 되찾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로운 서반구가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베네수엘라 망명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의 일부분이다. 연설 시점은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후안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앞세운 쿠데타 시도(4월 30일)를 두 달여 앞둔 때다. 트럼프는 마두로 정부를 타도한 뒤 니카라과와 쿠바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도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것이다.

그 이후 상황은 트럼프가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국가 타도’ 목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비록 베네수엘라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지만, 지난 11월 10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축출하는 우익 쿠데타는 성공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목표를 밀어붙일 명분을 다시 얻었다. 모랄레스가 권좌에서 쫓겨나면서 미국의 다음 목표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74)이 될 것이 분명해졌다. 왜일까?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왼쪽)이 2016년 11월 6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부인이자 러닝메이트인 로사리오 무리요와 함께 투표를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지난 11월 10일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오르테가는 다음 축출 대상에 올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행정명령 연장하고 추가 경제제재 준비

모랄레스 축출 쿠데타 다음날인 지난 11월 11일 트럼프는 볼리비아 군부 쿠데타를 찬양하면서 다음 목표가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 사건은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의 비합법적 정권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고 선언했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에게 보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실제로 2주 뒤인 지난 11월 25일 트럼프는 오르테가를 압박하는 조치를 취했다. 약 1년 전 니카라과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행정명령을 앞으로 1년간 더 연장한다는 내용의 성명 발표가 그것이다.

지난해 11월 27일 트럼프는 행정명령 제13851호를 통해 “니카라과의 상황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대외정책의 엄청난 위협이 된다”면서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고 밝혔다. 미 의회도 오르테가 압박에 동참했다. 지난해 12월 13일 ‘니카라과 투자 및 조건부융자법(NICA)’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쿠바 태생 네오콘인 공화당 하원의원 일리나 로스-레티넨(플로리다)과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테드 크루즈가 주도했다. NICA에 따라 트럼프는 니카라과에 제재를 부과하고, 국제 금융기관이 니카라과와 거래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연장에 앞서 미 재무부 외국자산통제국은 지난 9월 4일 니카라과에 대한 규제를 더 포괄적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지난 11월 8일 재무부는 니카라과 제재 관련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미 독립 온라인 매체 <더 그레이존>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5년 베네수엘라를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발동한 행정명령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경제제재 부과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트럼프의 행정명령 연장이 더 많은 경제 공격을 수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카를로스 트루히요 미주기구(OAS) 주재 미국대사는 이 방송에 “니카라과에 대한 압박이 계속될 것”이라며 트럼프가 몇 주 안에 새로운 경제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니카라과에 대한 일련의 경제제재는 미국이 정권 교체를 시도할 때 활용하는 공식 중 가장 먼저 취하는 조치다. 미국의 정권 교체 작업은 대개 ‘경제제재→반정부 시위 및 지도자 독재자 낙인찍기→꼭두각시 내세우기→가짜뉴스 퍼뜨리기→쿠데타 시도→정권 교체’ 순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제재로 니카라과 경제는 물론 국민의 삶도 송두리째 흔들렸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제재 이전까지만 해도 니카라과의 경제 성장률(2010~2017년)은 연평균 약 5%였다. 외국 투자도 몰려들었다. 하지만 지난해는 마이너스 3.8%를 기록했다. 올해 전망치는 마이너스 5%대다. 추가 경제제재가 내려질 경우 내년 니카라과 경제는 더 악화돼 사회는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대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미국이 경제제재로 노리는 효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25일 발표한 성명. <더 그레이존> 웹사이트 캡처

정권 타도 투쟁으로 번진 지난해 시위

미국의 니카라과에 대한 다각적인 압박은 지난해 4월 중순 시작된 혼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도대체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니카라과 상황이 어떻길래 미국은 니카라과를 여전히 국가안보와 대외정책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 미국의 압박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면 니카라과 상황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니카라과를 뒤흔든 반정부 시위는 오르테가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안이 발단이었다. 오르테가는 재정 부실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소득세 증액과 연금 삭감 등을 담은 개혁안을 내놨지만 4월 18일 수도 마나과의 대학생들은 이에 반발해 시위를 시작했다. 사태는 유혈사태로 번졌다. 오르테가는 결국 사회보장제도 개혁 방침을 철회했다. 하지만 반정부 세력이 시민들의 분노를 이용해 오르테가 정부 타도로 전환시키면서 친정부 및 반정부 세력 간의 운명을 건 싸움이 됐다.

오르테가는 좌익 단체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 지도자로, 1979년 친미 소모사 정권을 무너뜨렸다. 미국은 우익 비올레타 차모로를 앞세워 1990~1997년 정권을 찾았지만, 다시 FSLN에 넘어갔다. FSLN 집권 이후 미국은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1980년 중반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니카라과 우익 반군 콘트라를 지원하기 위해 이란에 비밀리 무기를 판 스캔들인 ‘이란-콘트라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니카라과는 과거나 현재나 미국에게 반미 정권 타도의 시범케이스였으며, 그 핵심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오르테가였다.

지난해 미국이 지원한 오르테가 타도 시도는 실패했다. 대신 미국은 다음 목표로 베네수엘라를 잡았으나 올해 봄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다시 모랄레스 축출을 목표를 잡았고, 결국 성공했다.(주간경향 1354호 ‘모랄레스 축출 쿠데타 뒤에 미국이 있다’ 참조) 니카라과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7월 중순부터 잦아들었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니카라과 사태를 두고 시민항쟁이라는 시각과 쿠데타라는 시각이 대립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중요하다. 하지만 서방 언론은 반정부 매체의 보도를 주로 인용함으로써 사태를 왜곡하는 데 앞장섰다. 지난해 6월 16일 발생한 ‘3층 건물 방화사건’이 대표적이다. 복면을 쓴 젊은이들이 그날 수도 마나과의 카를로스 마르크스 지역에 있는 3층 건물에 화염병을 던져 두 살 여자아이를 비롯해 6명이 사망했다. 사건의 주범이 누구냐에 따라 친정부, 반정부 세력 한쪽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니카라과 거주 작가 존 페리는 지난 7월 중순 <더 그레이존>에 기고한 글에서 “이 사건은 평화적 시위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지만 정부의 시위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서방 언론이 사건을 누구보다 먼저 보도한 반정부 매체들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페리에 따르면 인권단체 CENIDH의 대표 곤살로 카리온은 방화의 책임을 정부 지지자 탓으로 말하는 인터뷰를 했다. 반정부 TV 채널 ‘카날10’도 생존자 인터뷰를 통해 경찰의 책임이라고 전했다. 니카라과 최대 신문인 우익 <라 프렌사>도 오르테가 지지자들의 탓으로 돌렸다. <로이터>, ,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서방 주요 언론들은 반정부 매체 보도를 인용해 니카라과 사태를 전하는 데 급급했다. 반정부 매체들의 결론은 건물 옥상을 저격수 배치 장소로 사용하는 데 거부하자 정부 요원 또는 경찰이 보복으로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사건의 실체는 반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드러났다. 니카라과 경찰은 지난해 12월 19일 용의자들을 체포했다. 조사 결과는 발생 당시 보도와 정반대였다. 페리는 독립 언론인 두 명이 취재해 지난 6월 보도한 내용을 인용해 “사건 당시 현장으로 가는 주변 도로에는 약 30개의 바리케이드가 있었으며, 현지 주민들은 무장한 그룹이 그 지역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었고, 생존자 가족들은 시위대로부터 위협받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페리는 “방화사건은 국제 언론들이 지난해 니카라과 사태를 취급하는 한 사례일 뿐”이라면서 “국제 언론들은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묻기보다는 미국이 선호하는 니카라과에 관한 이야기를 열심히 홍보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니카라과 반정부 시위의 대학생 지도자들이 그해 6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왼쪽 사진 가운데)과 일리나 로스-레티넨 하원의원(오른쪽 사진 가운데)을 만나고 있다. <더 그레이존> 웹사이트 캡처

트럼프판 ‘콘도르 작전’ 기구 NEDUSAID

미국은 지난해 니카라과 반정부 시위 때 반정부 매체와 단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대표적인 지원 기구가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NED)’과 ‘국제개발처(USAID)’다. NED는 해외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만든 소프트 파워 기구로, 미 의회를 통해 예산을 지원받는다. USAID는 국무부 산하 대외 원조기관이다.

<더 그레이존>에 따르면 NED는 2014년 이후 니카라과 반정부 매체와 단체 54개에 410만 달러를 지원했다. 목적은 ‘니카라과 좌파 정부 타도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USAID도 같은 목적으로 2014~2017년 니카라과 반정부 세력에게 5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마크 그린 USAID 처장은 지난해 11월 말 니카라과에 400만 달러 투입을 선언했다.

니카라과는 1983년 설립된 NED가 처음으로 개입한 나라다. NED의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반FSLN 매체 <라 프렌사>에 대한 지원이었다. <라 프렌사>는 니카라과 첫 여성 대통령으로 1990년 4월 25일부터 1997년 1월 10일까지 집권한 비올레타 차모로의 남편이 편집장을 지낸 매체였다. NED는 반미 정권 교체에 성공하자 니카라과에 지원한 금액은 무려 1600만 달러에 달했다. 미 포트루이스대의 벤저민 웨들 교수는 지난해 5월 라틴아메리카 뉴스 사이트인 <글로벌 아메리칸스> 기고에서 “미국의 지원이 니카라과 봉기를 키우는 역할을 하도록 도왔다”면서 “니카라과의 시민사회단체를 육성하는 NED의 개입은 21세기 정치적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초국가적인 지원의 힘을 알려준다”고 썼다.

미국의 우익 옹호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초 이를 주도한 대학생 지도자들을 워싱턴에 초대해 극우 공화당 정치인들인 테드 크루즈·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일리나 로스-레티넨 하원의원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학생 지도자들은 국무부 고위 관계자와 USAID 관계자들도 만났다. 두 달 뒤인 8월 중순에는 한 학생 지도자가 극우 군국주의 친이스라엘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를 방문했다. 학생 지도자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오르테가 정부 타도를 위한 미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콘도르 작전’. 냉전 시절 미국이 중남미 좌파 국가 타도를 위해 펼친 악명 높은 공작정치의 암호명이다. 당시 공작정치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했다. 시대가 바뀌면서 그 역할은 NEDUSAID가 떠안았다. 모랄레스 축출 쿠데타 성공으로 21세기 트럼프판 ‘콘도르 작전’의 검은 그림자가 니카라과에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