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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기사/월드프리즘

[월드 프리즘38] '죽음의 수용소'가 된 미국 불법이민자 수용시설(191223/주간경향 1357호)

16세 소년과 40세 성인의 죽음으로 본 열악한 환경과 실태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체포돼 미 이민당국의 수용소에 수감 중인 불법이민자 수는 지난 8월 현재 5만5000명이 넘는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불법이민자들은 ‘입국이냐, 송환이냐’를 놓고 이민당국이 심사하는 동안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운영하는 임시시설을 거쳐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수용시설로 보내진다. 이들 중에는 지난해 논란 끝에 종료된 가족분리정책 이후에도 부모와 떨어진 채 수용된 1100명이 넘는 미성년자가 포함돼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이민자 본국 강제송환 조치에 따라 이를 기다리는 장기 불법체류자들도 있다.

CBPICE 수용시설은 열악한 환경과 규정 미준수 등으로 나치의 ‘강제수용소’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수용자가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ICE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66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실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언론에 공개된 두 건의 수용소 내 사망 사건은 그 실태를 잘 보여준다. 두 사례는 닮은 점이 많다. 자국의 폭력과 정정불안,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천신만고 끝에 왔건만 죽음이 이들을 기다린다면 미국의 이민관리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5월 20일 오전 6시쯤(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웨슬라코의 관세국경보호청(CBP) 수용시설의 환자 격리 수감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16세 소년 카를로스. 카를로스는 격리되기 전 독감 진단을 받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 <프로퍼블리카> 웹사이트 캡처

미국 도착 일주일 만에 숨진 16세 카를로스

지난 5월 20일 오전 6시쯤(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웨슬라코에 있는 CBP의 격리시설 수감방에서 16세 소년 카를로스가 숨진 채 발견됐다. 꿈에 그리던 미국 땅을 밟은 지 정확히 일주일 만이었다. 당시 그의 죽음과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CBP가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 샌더스 당시 CBP 청장대행은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성명을 냈고, CBP는 직원이 카를로스를 체크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탐사보도 전문 독립언론 <프로퍼블리카>가 텍사스주 정보공개법을 통해 입수한 동영상을 비롯한 수감일지, 건강기록 등을 분석해 12월 5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CBP는 카를로스 건강상태 확인에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심지어 카를로스의 발견과 관련해서는 거짓말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과테말라의 중부 지역 외딴 시골 출신인 카를로스가 미국 땅을 밟은 때는 지난 5월 13일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인인 누나와 함께 버스로 멕시코를 통과한 뒤 고무보트로 리오그란데강을 건넜다. 곧바로 CBP 직원에 체포된 그는 매켈런에 있는 CBP 시설로 옮겨진 뒤 누나와 헤어졌다. 법적으로 CBP에서는 ICE 수용시설로 가기 전까지 3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카를로스가 온 5월에만 체포자가 14만4000명이나 돼 예외가 적용됐다. 그 바람에 그는 6일간 CBP 시설에 머물렀다.

설상가상으로 그사이 건강상태가 악화됐다. 5월 19일 오전 1시, 그는 임상 간호사에게 두통과 열을 호소했다. 검사한 결과 독감이었다. 체온은 39.4도나 됐다. 타이레놀 투약과 타미플루 접종을 처방한 간호사는 2시간 안에 카를로스를 의료실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CBP는 이후 19시간 동안 아무런 의료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날 낮 다른 환자들과 함께 격리시설로 옮겨졌다. 그날 자정 무렵 따뜻한 음식이 제공됐다. 그것이 CBP 직원이 본 카를로스를 마지막 모습이었다.

<프로퍼블리카>가 입수한 카를로스 방을 찍은 감시카메라 영상에는 5월 20일 오전 1시 13분부터 33분간, 5시 48분부터 1시간 11분간의 모습이 기록돼 있었다. 그사이 약 4시간의 기록이 없다. 오전 1시 13분은 카를로스가 마지막 음식을 먹은 지 1시간가량 지난 때다. 카를로스는 유치장 변기에 앉아 있고,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소년 환자는 시멘트 벤치에서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1시 24분 카를로스는 얼굴을 바닥에 부딪히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1시 35분쯤 피를 토하고 일어난 그는 변기로 비틀거리며 이동한 뒤 1분 뒤 변기에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4분 뒤인 1시 39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이 찍은 영상에는 그의 머리 주변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오전 5시 48분에 시작되는 동영상에서의 카를로스의 모습은 4시간 전과 같았다. 6시 5분 카를로스의 동료가 잠에서 깨어나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카를로스를 발견했다. 약 1분 뒤 그는 문으로 다가와 CBP 직원에게 알리자 직원이 안으로 들어와 손전등을 비춰 본 뒤 자리를 떠났다. 몇 분 뒤 의사가 들어와 가슴 압박을 시도했다. 6시 47분에 도착한 웨슬라코 응급구조자는 카를로스 사망을 선언했다. CBP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그는 아침 체크 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시보고서는 카를로스가 발견되기 얼마 전에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검시의는 카를로스가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은 뒤부터 발견될 때까지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문가들은 카를로스의 마지막 며칠 동안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잘못은 독감으로 고통받는 16세 소년을 병원이 아닌 유치장으로 보낸 일이다. <프로퍼블리카> 요청으로 카를로스의 사망 관련 기록을 본 법의학자 주디 멜리넥은 “전염성이 있는 환자를 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아닌 유치장에 넣었는가?”라면서 “어느 누구도 돌보미의 보살핌 없이 이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잘못은 유치장 창을 통해 카를로스를 관찰하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한 점이다. CBP 근무일지에는 오전 2시 2분, 4시 9분, 5시 5분 등 3차례 순찰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담당 직원은 유치장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을 뿐 들어가지 않았다. 마지막 잘못은 숨진 카를로스가 어떻게 발견됐는지에 대해 거짓으로 보고했다는 점이다.

카를로스는 최근 1년 안에 사망한 6번째 미성년 희생자다. 이 가운데 최소한 두 명이 CBP 수용 중 독감 진단을 받고 숨졌는데, 수용소 안에서 죽은 것은 카를로스가 처음이라고

<프로퍼블리카>는 전했다. 카를로스 사망 이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CBP는 현장 의료진 숫자를 확충했다. 미 보건부는 불법이민자 비상 유입에 대비해 수용인원을 1만5000명에서 2만 명으로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샌더스 CBP 전 청장대행은 “미 정부가 카를로스와 같은 사람들을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고 시인했다. 카를로스의 아버지는 “미 이민당국은 이민자를 더 돌봐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은 어느 누구도 카를로스처럼 죽게 놔둬서는 안 되는 나라”라고 말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 수용시설에서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불법이민자들. <프로퍼블리카> 웹사이트 캡처

독방수감 40세 정신질환자 로메로의 자살

지난해 7월 10일 밤 미 조지아주에 있는 스튜어트구치소에서 본국 송환을 기다리던 40세 불법이민자 로메로가 자살한 채 발견됐다. 스튜어트구치소는 ICE가 민간업체 코어시빅에 위탁·운영을 맡긴 미국에서 가장 큰 수용시설이다.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로메로가 자살한 곳은 구치소 내 독방이었다. 그가 생을 마감한 날은 독방수감 21일째였으며, 법원의 강제추방 선고가 내려진 지 일주일 만이었다. 로메로는 왜 독방에 수감됐을까. 고국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그는 왜 목숨을 끊었을까.

지난해 7월 10일 밤 미국 조지아주 스튜어트구치소 독방에서 본국 송환을 기다리던 중 자살을 한 40세 정신질환자 로메로와 그가 양말로 만든 올가미(작은 사진). <인터셉트> 웹사이트 캡처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 매체 <인터셉트>가 지난 8월 29일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 <테이크어웨이>와 공동으로 조지아주와 코어시빅, 로메로의 변호사를 통해 입수한 그의 수용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코어시빅 직원들은 정신질환자의 수감에서부터 교화과정까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로메로는 유엔이 고문으로 간주해 금지한 15일 이상 독방수감을 두 차례나 당했는데, 이것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결정타가 됐다.

멕시코 중부 푸에블로주 출신인 로메로는 20대 초반인 2000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2004년 차량탈취 및 범죄도구 소지 혐의로 8년 징역형을 받는 등 범죄경력 때문에 영주권을 취득하지 못했다. 그가 스튜어트구치소에 수감된 때는 범죄경력이 있는 불법이민자들을 본국으로 강제 추방하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던 2018년 3월이다. 한 달 전 절도혐의로 체포된 그는 이미 2017년 9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로메로는 두 차례 독방수감됐다. 첫 번째는 2018년 4월 3일부터 보름간이었다. ICE가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6월 19일이었다. 이번에는 30일간이었다. 약물치료 거부가 이유였다. 로메로 가족의 변호사 앤드루 프리는 “15일간 수감된 로메로를 보면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그것이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텍사스대 로스쿨의 란자나 나타라잔은 “독방수감은 자살 위험을 급격히 높인다”면서 “심각한 정신질환자의 경우 자해 및 자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ICE는 독방수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로메로는 두 번째 독방수감 중 동료들에게 자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늘 이상한 일을 해온 터라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살하기 일주일 전인 7월 3일 이민판사는 추방명령을 내렸다.

두 번째 독방수감 21일째인 7월 10일 밤 8시 4분, 로메로는 평소보다 일찍 소등했다. 동료들은 “무슨 일이 있다”며 직원에게 확인을 요구했다. 직원은 그때부터 규정에 따라 30분 간격으로 순찰을 하며 로메로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뒤 근무일지에 서명했다. 하지만 근무일지는 위조됐다. 8시 40분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차례 순찰에서 유치장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 사인만 한 사실이 감시카메라로 확인된 것이다. 10시 34분 순찰에 나선 그다음 근무자는 “두 차례 창을 통해 봤으나 반응이 없어 긴급 의료진에게 연락했다.” 결국 8시 40분을 끝으로 아무도 지켜보지 않은 동안 로메로는 양말로 올가미를 만들어 자살했다.

근무자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엉망이었다. 의료담당 직원이 의료진에게 연락했으나 무전기는 꺼져 있었고, 첫 의료진이 가져온 산소탱크는 비어 있었으며, 자동심장충격기(AED)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나타라잔 교수는 “생명구조 기구인 AED나 산소탱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중대한 실패”라고 말했다. 로메로가 발견된 지 11분이 지난 뒤 응급의료진(EMS)이 도착해 앰뷸런스로 그를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그는 밤 11시 29분 사망선고를 받았다.

로메로의 이야기는 무엇보다 독방수감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엔은 2011년 15일 이상 독방수용을 고문으로 간주해 금지했다. ICE도 2013년 수용자의 건강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ICE는 로메로 같은 정신건강 진단을 받은 수용자의 독방수감을 금지했지만 수감 경험자 약 40%가 정신병력 진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ICE에 따르면 2018년 3월 현재 정신질환 수용자는 1996명이다. 전체 수용자 5만5000명의 4% 수준이다.

스튜어트구치소를 위탁·운영하는 코어시빅의 관리체계도 지적됐다. 이 구치소에서는 로메로가 자살하기 14개월 전에도 조현병 진단을 받은 수용자가 독방수감 19일째 자살하는 등 지난 2년간 최소 25명이 사망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ICE 수용시설의 건강관리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의료진 운영이 지적됐다. 로메로가 숨지기 20일 전이었다.

일시적 체류 목적의 ICE 수용이 이민자를 죽음으로 내몬다면 미 이민관리 체계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권변호사 아즈더 샤샤하니는 <인터셉트>에 “ICE와 코어시빅은 모든 단계에서 로메로를 다루는 데 실패했다”면서 “이 끔찍한 시설은 즉시 폐쇄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메로 가족 변호사 앤드루 프리는 “수감 자체가 문제”라면서 미국의 이민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