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복합체’ 배불리기… 국방부도 예산의 90% 사용처 잘 몰라
‘6조4090억 달러’. 2001년 ‘테러와의 전쟁’ 시작 이후 미국이 전쟁에 쏟아부은 돈이다. 미 브라운대 왓슨연구소가 2020년 예산까지 포함한 추산치다. 미국의 전비(戰費)를 계산하고 있는 진보 싱크탱크 정책연구소(IPS)의 ‘국가우선순위프로젝트’는 4조8930억 달러로 추산한다. 초당 전비는 1만 달러. 1초당 세금 1만 달러가 낭비된다는 의미다.
‘7380억 달러’.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 1일~2020년 9월 30일) 국방수권법(NDAA)에 담긴 국방예산이다. 지난 회계연도에 비해 220억 달러,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마지막 때보다는 1200억 달러가 증가했다. 미국 다음 7개국의 국방예산을 모두 더한 것보다도 많다. 512조3000억원 규모인 한국의 내년 예산과 비교하더라도 약 60%나 많은 규모다.
윈 위다웃 워, 무브온, 코드핑크 같은 미 시민단체 30여 곳은 하원이 국방예산을 통과시키기 하루 전인 12월 10일(현지시간) 7380억 달러는 “영원한 전쟁을 위한 백지수표이자 트럼프를 위한 선물”이라고 비난했다. 해마다 천문학적인 숫자놀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민주당·공화당 할 것 없이 국방예산 앞에서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다. 실제로 하원의원 가운데 민주당 의원 18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내년 대선 경선 후보들은 TV토론에서 국방예산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거나 정치자금 모금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이나 다른 공식석상에서 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지난 18년 동안 똑같은 화두를 따랐다.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든, 그리고 특히 전쟁이 악화되고 있을 때도 그들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를 강조한다.” 미 하원이 국방예산을 통과시키기 이틀 전인 12월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가 폭로한 ‘아프가니스탄 페이퍼스’ 내용이다. 한마디로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겼다고 미국인들에게 거짓말하면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이다. 전쟁광들의 거짓말에 세금만 낭비되고 있는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는 걸까.
7380억 달러 규모의 2020 회계연도 미국 국방예산이 최근 미 의회에서 통과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인만 기다리고 있다. 미 국방예산은 베트남전쟁과 냉전 종식 직후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기본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 국방부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전쟁 이후 상승, 군산복합체의 산물
전쟁은 죽음이 죽음을 낳는 악순환이다. 미국이 이 악순환에 빠져든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산이다. 당시 전쟁경제에 기여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찰스 윌슨 회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전쟁경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1961년 1월 17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고별연설에서 말한 ‘군산복합체’로 귀결된다. 미 작가 폴 앳우드는 지난 8월 30일 <카운터펀치> 기고에서 “영원한 전쟁 국가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파렴치한 주장으로, 납세자의 등 위에 세워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주장은 군산복합체의 속임수라고 꼬집으면서 “군산·의회·정보기관·대학·미디어복합체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미 국방예산은 베트남전쟁이나 냉전 종식 직후 일시적인 감소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상승 곡선을 유지해왔다. 미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의 윌리엄 하퉁 군비안보프로젝트 책임자에 따르면 2019년 국방부 지출은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할 경우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보다 많았다고 지난 12월 15일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그는 국방예산이 줄어들지 않은 이유로 방위산업체 성장에 따른 로비스트의 힘, 9·11에 따른 테러 위협, 정치인의 선거 패배 우려, 군부의 맹목적인 세계 지배 전략 고수를 꼽았다.
하퉁에 따르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핵 동결 캠페인 덕분에 일시적으로나마 군비감축에 진전을 보였지만 1990년대 들어 이란·북한·이라크 등을 불량국가로 지칭하면서 다시 증가했다. 1991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 개입한 1차 걸프전은 미국인의 ‘베트남 신드롬’의 악몽을 되살렸다. 냉전 종식은 군비축소에 영향을 미쳤지만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 내 방산업체 간 연쇄 합병을 몰고 왔다. 록히드와 마틴 마리에타가 합병해 록히드마틴이 탄생했고, 노스롭과 그루먼이 합쳐 노스롭그루먼이 됐다. 보잉은 맥도널 더글라스를 매입했다. 그 결과 록히드마틴·보잉·레이시온·노스롭그루먼·제너럴다이내믹스 등 미 5대 방산업체는 해마다 국방부와 1000억 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며 국방예산 증가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중동은 방산업체들의 새로운 무기판매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1993~1994년 중동에 무기를 판매한 규모는 매달 10억 달러 수준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정책도 이들에게 무기를 판매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2000년대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 대외정책을 주도해온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산실은 ‘새로운 미국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였다. 대표적인 이들이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국방 부장관 등이다. 이들은 아들 부시 행정부에 합류해 2003년 이라크 침공의 설계자들이 됐다. 결국 대규모 방산업체에 대한 미 정부의 지원과 나토 확장 등 팽창정책으로 증가세를 보이던 국방예산은 9·11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됐다는 게 하퉁의 설명이다.
수도꼭지가 열린 것처럼 급증하게 된 국방예산을 포함한 국가안보 예산은 2019년에 1조2542억 달러에 달한다. 비영리단체인 정부감시프로젝트(POGO)가 전비와 전쟁 준비 비용, 전쟁의 결과에 따른 비용을 합해 지난 5월 내놓은 추산치다.
1950년 이후 미국 국방예산 추이. <카운터펀치> 웹사이트
미 국방부도 모르는 국방예산 사용처
미국의 유명 국방분석가 피에르 스프레이 등은 지난 8월 30일 <카운터펀치>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전쟁 이후 국방예산은 5% 성장 곡선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으며, 이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군의 능력은 저하됐다면서 국방예산의 비효율성을 꼬집었다. 이들은 CIP, POGO, 정책연구소(IPS), 국가우선순위프로젝트가 올해 중반에 각각 펴낸 보고서를 분석해 국방예산의 비효율성을 없애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아프간·이라크·예멘·리비아·시리아·소말리아 등 미국이 관여하는 전쟁은 실패했으며, 세상을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뭔가를 해야 한다. 둘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시작되고 트럼프에 의해 확대된 대규모 핵 프로그램은 부분적으로 축소하거나 없애야 한다. 셋째, 재래식 무기와 기지의 인프라, 국방부의 군 및 민간인 프로그램을 취소하거나 줄여야 한다.
비효율성은 군 전력이 줄었음에도 국방예산이 줄지 않은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공군의 각종 항공기 보유 대수는 1968년 1만5476대에서 2010년 5900대로 62% 줄었다. 해군 전함도 같은 기간 932척에서 288척으로 69% 감축됐다. 미군 병력도 151만2000명에서 56만6000명으로 63% 줄었다. 반면에 국방예산은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5660억 달러에서 7570억 달러로 34% 늘어났다. 2010년 이후 상황도 해군 전함이 297대로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같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천문학적인 국방비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국방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제대로 된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2018년 자체 감사를 실시했다. 2019년 1월 나온 국방부 감사관의 보고서를 보면 결과는 암담한 실패라 할 만하다. 감사관 보고서는 국방부 기관의 56%, 국방예산의 90%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을 포기했다. 다시 말하면 국방예산의 90%가 어떻게 쓰였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미 헌법은 의회가 예산을 포함해 국방부의 모든 활동에 대해 감사하도록 하고 있지만 상·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보좌관이 준비한 질의서를 읽거나 국방부 증인들의 장광설을 듣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는 국방부와 방위산업체 간 ‘회전문 인사’ 탓이었다. POGO가 2008~2018년까지 국방부에서 방위산업체로 간 경우를 분석한 결과 국방부 고위관료와 군 장교 380명이 로비스트, 이사회 멤버나 임원, 방위산업체 컨설턴트 등 민간 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380명 가운데 록히드마틴·보잉·레이시온·노스럽그루먼·제너럴다이내믹스 등 미 5대 방산업체로 옮긴 이는 95명이다.
이들은 “이 같은 문제점들은 오랫동안 지적돼 왔음에도 전혀 진전이 없다”면서 “하지만 국방예산의 사용처, 세금 낭비 없이도 군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무기 구입, 무기체계에 대한 정직한 시험, 회전문 인사에 구애받지 않고 이 같은 업무를 감사할 인물 임명과 관련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반전평화단체 코드핑크 회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코드핑크 웹사이트
“10년간 최대 3조5천억 달러” 등 삭감 요구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2월 미국의 인프라 투자 예산 캠페인 시작을 축하하면서 “중동에서 바보같이 7조 달러나 쓰고서야 우리나라에 투자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내용의 트윗을 올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 같은 트럼프의 주장은 대선 캠페인 때나 인터뷰에서 반복됐다. 물론 트럼프가 주장한 수치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이 2001년 이후 중동(아프가니스탄 포함)에서 쓴 전비는 적어도 1조8000억 달러에서 최대 6조4090억 달러까지 추산이 다양하지만 7조 달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트럼프도 천문학적인 전비가 국가 발전의 저해 요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국방예산을 줄이지 않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천문학적인 국방예산을 삭감해 ‘그린뉴딜’이나 ‘전 국민 건강보험’ 등 사회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20여 개 진보단체로 구성된 #PeopleOverPentagon은 해마다 2000억 달러씩 향후 10년간 2조 달러를 삭감할 것을 주장했다. POGO는 우주군 창설(26억 달러) 중단과 비자금으로 사용돼온 해외긴급작전(OCO) 예산(688억~1740억 달러) 폐지 등 23개 항목을 없애고도 국방비를 1조9900억 달러를 줄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OCO 예산은 200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다양한 전쟁에 사용된다. 법적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아 ‘비자금’으로 불린다.
내년 대선의 민주당 경선후보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OCO 예산 등을 줄이면 향후 10년간 8000억 달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9·11 이후 OCO 예산은 2조 달러로, 연평균 1160억 달러에 이른다. CIP, IPS, 국가우선순위프로젝트, POGO도 OCO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향후 10년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산은 최대 3조5000억 달러였다. IPS의 국가우선순위프로젝트 책임자인 린지 코시거리언은 지난 11월 3일 전 국민 건강보험을 위해 국방예산을 3000억 달러 이상 삭감할 것을 제안했다. CIP도 향후 10년간 1조2500억 달러를 삭감할 것을 주장했다.
국방예산을 다른 용도로 쓰면 어떤 효과를 거둘까. IPS는 지난 4월 2018년 국방예산 7126억 달러로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1년간 882만 명의 초등학교 교사에게 임금을 주거나, 청정에너지 관련 일자리 962만 개나 인프라 일자리 1283만 개를 창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4년간 대학생 2023만 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거나, 1년간 12억3000만 가구에 풍력 발전을 공급하거나 11억4000만 가구에 태양에너지 발전을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국방예산 감소 방안과 요구는 쏟아지지만 매년 상승하는 국방예산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는 점이다. 그 사이 23조 달러가 넘는 미국의 국가채무는 늘어만 갈 것이고, 세계는 그에 따른 고통의 악순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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