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안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를 무대로 한 영화 ‘어 퓨 굿맨’(1992)이 다룬 것은 군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었다. 이는 적어도 ‘미국의 문제’였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으로 관타나모는 테러 교관, 폭탄제조자, 자살폭탄테러범 등 알카에다 요원들을 감금, 불법 고문과 인권침해를 자행한 악명높은 수용소의 대명사가 되면서 ‘국제적인 문제’가 됐다. 9·11 이전에 익숙지 않던 ‘불법 전투원’ ‘수감자’ ‘계약자’와 같은 용어도 관타나모에서 비롯됐다. 용어만이 아니다. 전쟁의 새로운 법칙도 이곳에서 생겨났다.
스웨덴의 영화감독 에릭 간디니가 지난해 발표한 다큐멘터리 영화 ‘관타나모-전쟁의 새로운 법칙’은 이를 잘 보여준다. 영화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2월7일 서명한 문서에서 ‘테러리스트는 제네바 협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법전투원’이라고 규정했다. 알카에다와의 전쟁은 국가가 아닌 민간조직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전쟁포로(POW)를 위한 제네바 협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영화는 또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 학대사건의 심문 및 고문 기법이 관타나모로부터 도입된 사실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2002년 10월11일 다양한 심문을 허용하는 ‘강압적인 심문기법’을 승인한 사실도 보여준다.
이같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관타나모 수용소는 끊임없는 폐지 여론에 시달렸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수감자들을 군사재판 대신 군사위원회에서 처벌하는 미 정부 행위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해 폐지여론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존 매케인 등 3명의 공화당 의원도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테러수감자 법안 통과에 반발했다. 하지만 현실 속의 관타나모는 심문기법을 발달시킨 것처럼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백악관은 위헌판결에도 대통령에게 테러용의자에 대한 심문기법을 융통성있게 결정토록 한 수정 법안을 지난달말 의회에 제출, 상·하원으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테러용의자들을 합법적으로 조사·사법처리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2002년 9월11일부터 2005년 6월1일까지 관타나모를 추적해온 간디니 감독은 이렇게 끝맺는다. “관타나모에 갔다왔지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어쩌면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이미 우리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3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관타나모 수감자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고발했다. 미국 정부가 9명의 영국 출신 수감자를 석방키로 했는데도 영국 정부는 1명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들은 돌아올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조차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갇힌 곳, 우리가 관타나모 수감자와 미국의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어 퓨 굿맨’에서 부적응 사병을 숨지게 한 혐의로 법정에 선 사병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는 후배에게 “해병으로서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답한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냉엄한 현실 속에 ‘어 퓨 굿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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