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한판 붙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점만 해도 최대의 화제 인물은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였다.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딘은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딘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대선을 1년5개월 앞둔 2003년 6월23일. 출마 선언 1년여 전만해도 미 ABC방송은 12명의 잠재 후보군 가운데 그를 8위로 평가했다. 그런 그가 후보사퇴를 선언한 2004년 2월까지만 해도 민주당 후보 가운데 1위를 달렸다. 출마 선언 후 3개월 동안 모은 선거자금 규모는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세운 역대 민주당의 분기 최대 모금액인 1030만달러를 크게 넘어선 1480만달러나 됐다. 딘의 급부상은 알다시피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전략 덕분이었다. 인터넷은 신문과 방송이 지배하던 하향식 선거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웹사이트와 블로그, e메일은 젊은층과의 대화 통로로 활용됐다. 의사결정도 온라인 투표에 의존할 정도였다. 인터넷 선거자금 모금도 획기적이었다. 그는 당초 목표한 200만명으로부터 1인당 100달러씩, 총 2억달러 모금 계획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64만명으로부터 평균 80달러씩 5000만달러가 넘는 돈을 모을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가히 ‘인터넷 선거혁명’의 승리라 할 만했다.
지난주 2008년 미 대선 주자들의 첫 선거자금 모금액(1~3월)이 공개됐다. 2600만달러를 모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예상대로 1위였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2500만달러로 2위에 올랐다. 중앙정치 입문 2년 만에 거둔 성과로는 놀랍다는 게 언론들의 평가였다. 3위는 공화당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2300만달러였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같은 당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1500만달러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1250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것이어서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미 언론들이 대선주자의 선거자금 모금액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기본적으로 선거는 돈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돈은 그동안 대선 승리 방정식의 해법이었다. 각 후보들은 내년 1월 시작되는 예비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거홍보와 선거운동원 모집에 돈을 쏟아붓는다. 초반에 승기를 잡지 못하면 후보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 선거혁명으로 줄곧 선두를 달리던 딘 전 주지사가 예비선거에서 케리 후보에게 져 중도사퇴한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딘의 몰락은 다른 요소가 결합된 결과지만, 인터넷이 선거승리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차기 미 대선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지난 대선까지 인터넷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다. 향후 인터넷의 위력은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과 돈이 결합할 경우 백악관 입성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선거자금 모금에서 선두권을 형성한 클린턴 상원의원과 오바마 상원의원이 올해 초 대선 출사표를 던질 때 활용한 방법은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선거운동의 선구자 딘이 미 선거운동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그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다. 차기 미 대선에서 ‘대통령은 돈이 만든다’는 신화는 깨지지 않을지 몰라도 인터넷을 모르고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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