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입에서 닳고 닳은 주제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북한 전력난, 이라크 저항세력의 언론전략과 미국 언론의 이라크전 보도에 대한 불만 등등. 그도 그럴 것이 취임 이후 약 6년 동안 병사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이 자리가 벌써 42번째다. 이골이 날 만도 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도 나왔고,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도 등장했다. 1970년대 유럽공산주의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곁들여졌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이라크전은 성공할 것”이었다.
지난 8일 퇴임을 열흘 앞두고 미국 펜타곤에서 진행된 도널드 럼즈펠드 고별회에 대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보도 내용이다. 기자는 거침없으면서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유감없이 발휘된 자리로 묘사하면서 ‘럼즈펠드 쇼의 마지막 무대’가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뒤로한 채 이라크로 날아가 “미군의 진정한 힘은 워싱턴도, 펜타곤도, 무기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애국심에 있다”면서 애국심을 호소했다. 그는 여전히 미국의 국방장관이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의 임기가 끝나기까지는 엿새가 남아 있다.
럼즈펠드 장관이 누구인가. 그는 미 역사상 국방장관을 두 번이나 맡은 첫 인물이다. 70년대 중반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 최연소로 시작한 그의 국방장관 경력은 역대 두 번째로 장수한 국방장관이라는 자랑스러운 기록을 남기며 18일 마감한다. 최장수 국방장관 기록은 베트남전 당시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갖고 있다. 그는 또한 미군의 새 전략인 ‘럼즈펠드 독트린’의 구상자이다.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추구하는 ‘파월 독트린’ 대신 첨단무기와 속도전을 강조하는 전략이다. 이 독트린은 이라크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새로운 테러와 안보위협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해외주둔 미군재배치 검토(GPR)’도 이 독트린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등과 함께 21세기의 문호를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열게 한 장본인의 한 사람으로 지목받고 있다. 21세기 첫 전쟁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그후 이라크 침공이 그의 취임 이후 자행됐다.
그는 스스로 취임 이후 613번이나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1년에 100차례나 언론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황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또한 강압적인 심문기법을 도입한 인물이다. 악명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의 수감자 학대사건은 그 결과물이다. 그는 펜타곤 고별회에서 재임기간 동안 최악의 날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 학대사건을 알았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엿새 후면 민간인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에게 이라크전은 퇴임 후에도 그의 머리 위를 배회하는 유령이 될 것이다. 약 6년 동안의 공직에서 물러나는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부 그라이브와 관타나모에서 ‘한 짓’에 대한 심판이다. 2년 전 같은 소송은 기각됐다. 세계 최강국의 현직 국방장관이라는 보호막이 작용한 것이다. 럼즈펠드 장관은 펜타곤 고별회에서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짧지만 낙관적으로 대답했다. “언론보다는 나을 것이다.” 역사는 진정 그를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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