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못 쉬겠어(I can’t breathe).” 2014년 7월17일 오후 미국 뉴욕시 스테이튼아일랜드. 거대한 체구의 흑인이 백인 경찰관의 목조르기에 쓰러진다. 그는 약 30초간 이 말을 11번이나 숨가쁘게 내뱉은 뒤 의식을 잃는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약 7분 동안 경찰은 그를 방치한다. 43세 에릭 가너는 그렇게 숨졌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권력 행사에 경종을 울린 ‘에릭 가너’ 사건이다. “숨을 못 쉬겠어”는 이를 계기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의 구호가 됐다.
사건 후 6년 만에 판박이 사건이 재발해 미국이 들끓고 있다. 희생자는 건장한 체격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46)다. 그는 지난 25일 저녁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약 8분간 목을 조여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플로이드 입에서 “숨을 못 쉬겠어”라는 말이 약 4분간 힘겹게 흘러나왔다. 공교롭게도 11번이었다. 플로이드와 가너의 체포 사유는 경미했다. 각각 위조지폐 사용, 불법 담배판매였다. 둘 다 비무장 상태였고, 경찰에 어떠한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다. 두 사건의 명백한 차이는 가해 경관이 해임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가너 사건에서는 1860일이, 반면 플로이드의 경우 단 하루가 걸렸다.
이제 시민들의 관심은 가해 경관에 대한 처벌 수위에 쏠리고 있다. 그동안 유색인종을 숨지게 한 경관 처벌은 관대했다. 공권력 행사를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가너 사건의 가해 경관도 그랬다. 혹여 기소돼도 유죄선고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유죄선고율은 33%, 이 중 36%만 실형을 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무리한 공권력 사용에 침묵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유감을 표할 정도로 파장이 크다.
“오늘부로 이런 일은 끝내야 돼.” 가너가 목조르기를 당하기 직전 경찰과 대화하며 체념조로 남긴 말이다. 그의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에릭 가너와 조지 플로이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권력 남용에 희생된 많은 이들의 대명사다. 미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숨겨져 있던 잔혹함이나 부패를 세상에 드러낸다”고 했다. 두 사람을 기억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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