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 북쪽에는 좁은 도로와 접한 공원이 있다. 라파예트 광장(Lafayette Square)이다. 프랑스 후작으로 의용군을 이끌고 미 독립전쟁에 참전한 드 라파예트의 이름을 땄다. 공원 네 모퉁이에는 라파예트를 비롯해 독립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외국인 영웅 4명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 조경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드루 잭슨 다우닝이 공원으로 개발했다. 그 전까지는 경마장, 묘지, 동물원, 노예시장, 군대 야영지 등으로 쓰였다. 백악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라파예트 광장은 ‘시위 1번지’로 유명하다. 백악관 앞 시위는 그 상징성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시위객들이 몰려든다. 과거 유신정권과 광주민주화항쟁 때 한국의 재야인사·재미교민들도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40년째 비닐움막을 치고 반핵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다. 윌리엄 토머스(2009년 사망)와 콘셉시온 피시오토(2016년 사망) 등은 1981년 6월부터 반핵시위를 벌이기 시작해 죽기 전까지 이곳을 지켰다. 반핵시위는 이들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불법 노숙이라는 이유로 비닐움막이 철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화시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후 이곳이 인종차별 철폐 시위의 ‘메카’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출한 17분간의 ‘포토 쇼’ 이후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지난 1일 경찰은 트럼프가 광장 건너편 세인트존스 교회로 가도록 길을 터주기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최루탄 등을 쏴 강제해산시켰다. 그리고 이튿날 백악관 둘레에 높이 2m가 넘는 철조망이 둘러졌다. 국립공원관리청은 10일까지 라파예트 광장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트럼프가 재갈을 물린 것이다. 보다 못해 민주당 지도부가 나섰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광장을 열라고 요구한 것이다. 라파예트 광장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 트럼프의 운명은 몰락하기 시작할지 모른다. 광장은 그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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