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GS건설·쿠팡 등 산업재해 다발 제조·건설·택배업 9개사의 대표들이 증인으로 출석한 산재 청문회가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렸다. 국회 상임위가 산재라는 주제로 개최한 첫 청문회인 데다 기업 대표들이 대거 참석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산재의 원인을 짚고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대안을 찾기 위한 생산적인 논의의 장이 되기는 부족했다.
이날 청문회에 나온 기업 대표들은 산재 책임을 묻는 의원들의 지적에 연신 사과하며 산재 예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고압적 태도로 기업 대표들을 몰아세우고, 기업인들은 또 마지 못해 사과하는 풍경이 재연됐다. 처벌 강화 등 법과 제도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산재가 줄지 않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마련하리라는 기대와는 딴판이라 실망스럽다. 역설적으로 이날 청문회는 산재가 빈발하는 원인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산재의 원인을 노동자의 부주의 탓으로 돌렸다가 비난을 자초했다. 산재는 노동자의 안전 의식뿐 아니라 불안한 시설과 장비, 기업의 관리·감독 3박자 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일어난다. 기업의 대표가 산재를 노동자의 과실 탓으로 돌리는 한 산재는 줄이기 어렵다. 또 한 택배 회사는 산재 불인정률이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은 데도 회사 대표는 “질환 관련 산재의 경우 전문가 소견이 필요했다”고 해명했다. 회사 측이 산재 인정에 인색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첫 산재 청문회의 의미를 가벼이 볼 이유도 없다. 이날 청문회를 계기로 기업들이 산재를 줄여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기업 대표들은 청문회에서 한 다짐들을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개정 산업안전법에 따라 3월 주총에서 안전보건계획을 승인받는 일이다. 노동부도 이날 대기업의 안전계획 수립-이사회 보고·승인 과정의 조기 이행 등 산재 사망 사고 감축 방안을 밝혔다. 기업 대표들의 다짐과 노동부의 산재 예방 노력이 이행된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날은 앞당겨질 것이다. 국회도 첫 산재 청문회를 계기로 산재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법·제도 정비에 한층 노력하길 바란다. 모두의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2021년 2월22일은 산재 예방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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