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첩보영화를 연상케 하는 암살사건으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하다. 지난 1월19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저항단체 하마스의 고위 간부 마무드 알 마부(50) 살해사건이다. 이스라엘 병사 2명의 납치·살해를 계획하고 이란 무기를 가자지구로 밀반입해온 인물로 알려진 마부는 두바이에 도착한 지 6시간도 채 안돼 머물던 호텔 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두바이 당국이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그의 암살에는 27명이 연루됐다. 이스라엘,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국적의 위조여권을 이용해 두바이에 온 이들은 마부가 두바이 공항 도착 때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50일이 지난 8일 국제경찰 인터폴은 두바이 당국의 요청에 따라 연루자 27명 모두에게 적색 수배령을 내렸다.
두바이 암살사건은 이스라엘 정부의 부인에도 정보기관 모사드의 소행으로 귀결돼가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예의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영국 등 여권이 위조된 국가들도 여권 위조에 대해서만 이스라엘에 형식적으로 항의할 뿐 마부 암살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엄밀히 보면 이들도 암살의 공범자라 할 수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의 MI5, 모사드 등은 냉전시대의 불쾌한 기억인 암살공작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자국 이익에 배치되는 인물을 탈법적으로 처단했다. CIA의 1961년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 암살사건, 피델 카스트로 쿠바 혁명평의회 의장에 대한 잇단 암살기도가 대표적이다. CIA 암살공작은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행정명령 12333호를 끝으로 형식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암살은 ‘표적 살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돼 왔다.
두바이 암살사건은 오랫동안 초법적으로 자행돼 왔으나 감춰진, 또다른 암살공작을 떠올린다. 바로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테러리스트에 대한 계획적인 살해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과 영국 등에 테러리스트를 살해할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 CIA는 9·11을 계기로 과거 심판자, 집행자 역할에 복귀했다. CIA가 알카에다와 탈레반의 활동무대인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국경에서 수행하고 있는 무인비행기를 활용한 미사일 공격은 허가된 ‘살인면허’나 다름없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8월 당시 파키스탄 탈레반 지도자 바이툴라 메수드 살해다. 월간 뉴요커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제인 메이어가 지난해 10월호에 쓴 관련 기사는 CIA가 그를 잡기 위해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메이어에 따르면 CIA는 메수드를 잡기 위해 14개월 동안 16차례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영국 BBC방송 기자 마크 어번에 따르면 영국 특수부대(SAS)도 마찬가지다. SAS가 이라크에서 암살한 테러리스트는 300~400명에 이른다. 독일과 호주도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 요인들을 목표로 한 암살에 동참했다.
무인비행기를 활용한 테러리스트 암살은 민간인 사망에도 아랑곳없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기야 미국은 민간인 사망을 ‘부수적 피해’로 부른다. 파키스탄 일간 ‘돈’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 후 파키스탄에서 무인비행기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은 700명이 넘는다. 테러리스트 1명을 잡기 위해 평균 140명의 민간인들이 희생된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계속되는 한, 요인 암살은 자국의 이해관계와 기존 사회·정치 질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끝없이 자행될 것이다. 미국의 허가받은 암살 공작은 오늘도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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