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12일 낮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의 거리.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골목 한 쪽에서 어슬렁거린다. 머리 위엔 미군 아파치 헬기 두 대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조종사들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군중 5~6명이 AK47 소총과 로켓추진수류탄(RPG) 등을 갖고 있다며 발포명령을 내릴 것을 상부에 요구한다. 이윽고 상부 지시를 받은 헬기는 이들에게 총탄을 퍼붓는다. 일부는 쓰러지고 일부는 몸을 피한다. 피하는 이들에겐 다시 총탄이 쏟아진다. 공중을 선회하던 헬기는 부상자 한 명을 발견하고 다시 발포 준비를 한다. 순간 승합차 한 대가 그를 싣기 위해 다가간다. 차 안에 어린이 두 명이 있었음에도 헬기는 이들에게 사격을 퍼붓는다. 아이 두 명은 겨우 목숨을 건진다. 이날 헬기 공격으로 10여명이 사망했다. 그 가운데는 로이터통신 소속 이라크인 2명이 포함돼 있었다.
미 정부와 기업의 불법행위를 고발하는 사이트 위키리크스(
www.wikileaks.org)가 지난 5일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한 비디오(
www.collateralmurder.com) 내용이다. 이 비디오는 약 3년 전 이라크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 사건을 다룬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미군 발표에 의존해 미군이 기습공격을 받고 공격해 무장세력 9명과 민간인 2명(로이터 고용인 2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 비디오를 보면 미군 발표가 거짓임이 드러난다. 몇 사람은 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긴장은 전혀 없다. 미군과의 교전은 더더욱 없다. 왜 미군이 그동안 비디오를 공개하라는 로이터의 요청을 거부했는지 알 만하다. 위키리크스는 이 비디오를 미군내 내부고발자들로부터 입수했다. ‘부수적 살인’이라는 제목은 민간인 사망자를 ‘부수적 피해’로 표현하는 미군의 주장에 빗댄 말이다.
가공할 만한 것은 조종사들의 교신 내용에서 볼 수 있는 태도다. 이들은 자신들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을 보고 고소해하고 환호한다. 승합차 속 아이들이 다친 데 대해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른들을 나무란다. “전쟁터에 애들을 데리고 오는 게 잘못이지.” 조종사들에겐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전쟁은 이들에게 인간을 사냥하는 게임일 뿐이다. 이 비디오는 과거 어두운 기억을 떠올린다. 2004년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 인권유린 사건이다. 포로들을 발가벗겨 바닥에 쓰러뜨리거나 알몸인 포로 머리에 두건을 씌운 채 문이나 침대에 손을 묶는 등 갖은 추행을 저지르면서도 즐거워하는 미군들. 미군은 이런 악몽 때문에 비디오를 감췄던 것일까.
이 비디오는 공개 9일 만에 유튜브 클릭 수만 약 600만회에 이를 만큼 파장이 크다. 하지만 미국은 사과는커녕 곧 잊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1일 미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비디오 공개로 미국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전쟁 중에 벌어진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군의 행위는 전쟁범죄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전쟁 중 환자는 아군이든 적군이든 돌봐야 한다’는 제네바협정을 어겼다는 것이다. 미군과 미 정치인들은 안다. 전쟁터에서 미군의 추행과 민간인 희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전여론만 높아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감춘다. “정치언어는 거짓말을 참말로, 살인도 훌륭한 일로 만들고, 허공의 바람조차 고체처럼 단단하게 보이게 고안된 것이다”라는, 위키리크스가 첫머리에 인용한 조지 오웰의 말이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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