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적이 있는가. 버스나 지하철에 지친 몸을 맡긴 채 해 질 녘 서쪽 하늘을 발갛게 물들인 노을을 보노라면 문득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낭만이 없어서가 아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구조 탓이다. ‘천만 도시’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에는 다리가 28개가 놓여 있다. 철교 4개와 인도가 아예 없는 청담대교를 제외하면 23개 다리는 이론상으로 걸어서 건널 수는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잠수교는 특별하다.
10번째 한강 다리로 만들어진 잠수교는 가장 짧지만 795m나 된다. 이름 그대로 홍수 때면 물에 잠긴다. 이 때문에 홍수철 방송사 카메라가 찾는 단골장소가 됐다. 한강 수위를 재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잠수교는 강남 개발의 산물이기도 하다. 1976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반포로 이전하면서 건설됐다. 유사시 군 장비의 신속한 도하와 홍수 시 유속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1982년 그 위에 반포대교가 세워지면서 자동차 교량으로서 역할은 사실상 끝났다. 잠수교는 1985년 영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에 나온 동명 노래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소절 끝마다 반복되는 ‘이상하다 그치’ ‘정말 이상하다’ 등의 여성 멘트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반포대교 건설 후 잠수교는 두 차례 대대적으로 개조됐다. 첫번째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둔 시점이었다. 건설 당시 선박 통행을 위해 다리 일부를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한 승개시설 장치를 없애고 중간 부분의 상판을 높인 아치형으로 바꿨다. 유람선이 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는 2008년 이뤄졌다. 4차로 중 2개 차선을 보행로와 자전거도로로 만들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잠수교가 한강 다리 중 가장 시민친화적인 다리로 변신한 계기가 됐다.
서울시가 잠수교를 차 없는 보행중심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올해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잠수교가 차 없는 다리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만시지탄이다. 잠수교의 세번째 변신이 성공해 서울의 명물 다리가 되도록 지혜를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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