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중 박근혜만큼 사과로 물의를 일으킨 이는 없다. 무엇보다 ‘대리(대독)’ 사과로 유명했다. 2013년 취임 후 김용준 총리 후보자 등 장차관급 6명이 도덕적 결격 사유로 무더기 낙마했다. 그때 사과문은 허태열 비서실장 명의였고, 김행 대변인이 대신 읽었다. 그해 5월 미국 방문 중 일어난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태’ 때는 이남기 홍보수석이 대독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삼성서울병원장이 먼저 대리 사과를 했다. 2016년 말 최순실 의혹이 터졌을 때는 ‘녹화’ 사과로 분노를 자아냈다.
정치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과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할 때가 많다. 사과하는 모양새만 드러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속성 탓이다. 사과의 생명은 타이밍과 진정성이다.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크다.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대상이 명확하고, 내용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풍을 맞기 일쑤다. 대리·대독·녹화 사과로 일관한 박 전 대통령에게 시민들이 진정성을 느낄 리 만무했다.
‘학살자’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씨가 지난 27일 남편의 발인식을 하며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전씨 사후 가족의 입에서 나온 첫 사과였지만 시민들의 염장만 질렀다. '재임 중'이라는 말로 사과 대상에서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시민들이 원한 것은 5·18 유혈진압 책임 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하지만 이씨는 기대를 저버렸다. 남편의 5·18 발포 책임을 인정하기는커녕 전씨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칭송한 이씨이니 무엇을 기대하랴.
인간은 대개 죽기 직전에 이르면 자신의 허물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생전에 하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유언이나 유서를 남기기 마련이다. 지난달 26일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5·18 피해자에게 사죄한다는 뜻의 유언을 아들을 통해 전했다. 사후의 사과가 최선은 아니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사과에서 출발한다. 전씨는 유언조차 남기지 않았고, 그 가족은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을 우롱했다. 시민의 용서는 필요 없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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