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하루 넘기고 3일 국회에서 처리됐다. 법정시한 내 처리의 발목을 잡은 예산안 가운데 하나가 72억원의 경항공모함(경항모) 사업이었다. 당초 지난달 16일 국회 국방위에서 5억원으로 대폭 삭감돼 사업 착수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막판에 원상회복됐다. 경항모 도입은 해군의 숙원이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제기된 뒤 2019년 국방중기계획에서 공식화됐다. 2033년까지 대략 길이 265m·폭 43m, 3만t급 항모를 건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항모는 ‘움직이는 영토’로 불리는 항공모함 중 규모가 가장 작다. 항모는 크기(t수)에 따라 대형항모(9만~10만t), 중형항모(4만~7만t), 경항모(1만~3만t)로 분류한다. 대형항모는 천문학적인 비용 탓에 미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최신 항모인 제럴드 포드(10만t) 건조에는 133억달러나 들었다. 대형항모 11척을 운용 중인 미국은 운영비로만 1년에 약 212억달러(약 25조원)를 투입한다. 한국의 내년 국방예산(약 54조6000억원)의 절반에 가깝다. 축구장 3배 크기의 갑판에 80대나 되는 전투기를 실은 채 호위함들을 이끌고 오대양을 누비는 항모전단을 보면 누구나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힘을 뒷받침하는 핵심 무기체계이다.
최근 들어 여러 나라가 항모 건조에 뛰어들고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 뿐만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해양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제럴드 포드급 항모 9척을 추가 건조할 계획이다. 6만~7만t급 중형항모 2척을 보유 중인 중국은 2030년까지 4척, 2040년까지 10척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도 이미 경항모 2척을 보유 중이다.
경항모 사업을 놓고 여야뿐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찬반 여론이 엇갈린다. 반대론자들은 경항모 도입이 중국이나 북한과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 이유가 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해군이 추산하는 건조 비용은 약 2조원이다. 하지만 통상 사업비는 처음 예상보다 늘어나기 마련이다. 예산안 통과는 본격적인 공론화의 시작이다. 미래 안보전략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격렬하게 토론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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