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린다. 200년 전인 1823년 12월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 그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로부터 미주 대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냉전 시절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등장하자 미국은 그때마다 쿠데타로 정권교체에 나섰다. 한 분석에 따르면 1945년 이후 미국이 시도한 정권교체 횟수는 68번이나 된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자를 경험했다고 한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 주도의 신자유주의 입김이 중남미를 지배했다.
중남미 정치 지형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말이다. 1999년 베네수엘라, 2003년 브라질, 2006년 볼리비아에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들어섰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는 ‘좌파 대통령 3총사’로 불린다. 반미와 포퓰리즘, 권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남미 12개국 가운데 10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중남미에서 온건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이 현상을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라고 한다. 이름에 분홍이 들어간 것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적색보다는 이들 정권의 색채가 옅기 때문이다. 견고하던 핑크 타이드는 2010년대 중반부터 힘을 잃어갔다. 원자재 가격 폭락과 재정 파탄 등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에 우파 정권이 등장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그 틈을 파고든 중국·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로 우파 물결은 퇴조하면서 2차 핑크 타이드 시대가 열렸다. 2018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분홍 물결이 다시 중남미를 휩쓸고 있다.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비아를 덮쳤다. 올해에는 페루, 온두라스에 이어 지난 19일 칠레로까지 번졌다. 내년에는 콜롬비아, 브라질로 이어질 기색이다. 중남미에서 2차 핑크 타이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러시아 영향력 아래 놓여 있지만 역대 최연소 대통령의 등장(칠레), ‘좌파의 아이콘’ 룰라(브라질)의 복귀 가능성이 2차 핑크 타이드를 공고히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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