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건립 875주년이다. 모스크바시는 해마다 9월 첫 주말에 기념행사를 연다. 올해는 10~11일이었다. 시민들이 크렘린 앞 붉은광장에 모여 막바지 축제를 즐기던 11일 러시아를 실망시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에서 퇴각한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하르키우주에서 러시아군을 퇴각시키는 등 이달 들어 영토 6000㎢(서울 면적의 약 10배)를 수복했다고 밝혔다. 11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꼭 200일이 되는 날이다. 초반 전세는 러시아에 유리했지만 이후 양측 간 공방이 팽팽히 이어지면서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군의 하르키우 퇴각은 우크라이나로서는 큰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동북부에 있는 하르키우주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주도는 우크라이나 2대 도시인 하르키우다. 우크라이나인이 다수를 점하지만, 러시아계도 전체 인구의 40%에 달한다.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이 무너지자 이곳에서도 친러 봉기가 일어났다. 하지만 분리독립을 선언한 인접 루한스크·도네츠크주(돈바스 지역)와는 달리 친러파는 하르키우를 장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도 러시아는 또다시 하르키우 함락에 실패한 것이다.
전쟁에서 일진일퇴는 다반사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하르키우 퇴각의 의미는 커 보인다. 이 전쟁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반격의 고삐를 바싹 죈 우크라이나는 돈바스 지역 탈환에 전력을 집중할 기회를 얻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강화할 명분을 얻었다. 러시아에는 전략을 수정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는 하르키우 퇴각을 인접 돈바스 지역에서의 군사력 강화를 위한 철군, 즉 전략적 후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는 전면전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에서부터 평화협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엇갈려 나오고 있다. 과격주의자들은 핵무기 사용까지 주장하고 있다.
결정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부디 그의 선택이 종전으로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강한 러시아’를 주장하는 세력의 말에 경도돼 전쟁을 연장하는 길만은 제발 피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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