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징 중 하나는 원자력발전소 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인 지난 2월24일 체르노빌 원전을 장악했고 3월4일에는 자포리자 원전을 손에 넣었다. 1986년 이래 가동이 중단된 체르노빌 원전에서는 곧 철수했지만, 자포리자 원전은 계속 장악해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자포리자는 우크라이나의 15기 원자로 중 6기가 모여 있는 유럽 최대의 원전 단지다. 2014년 러시아가 차지한 돈바스 지역에서 200㎞가량 떨어져 있다.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에도 위험한 도박이 될 수밖에 없다. 원전 운영은 전문가들이 맡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만, 원전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 자칫 방사능 누출 등 원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한 이후 포격 등으로 아찔한 상황이 있었다. 지난 25일에는 원전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해 원전 전력망이 일시적으로 차단됐다. 비상으로 갖춰져 있던 디젤발전기를 가동해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자칫하면 원자로 노심 용융(멜트다운)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멜트다운은 원자로 냉각장치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일어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도 쓰나미로 원자로 냉각장치를 돌릴 전기가 공급되지 않아 발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화재가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한 뒤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크름(크림)반도 등 러시아 점령지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해왔다. 이번 화재도 러시아가 전력망을 교체하던 중 일어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90분간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원자로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했을 때만 해도 세계는 이를 한낱 엄포로 간주했다. 하지만 자포리자 원전을 보면 원전 폭발 사고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재앙을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 이곳을 안전지대로 만드는 것이다. 러시아가 철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6개월 만에 국제사회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또 다른 숙제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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