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 끝에는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한반도 면적의 약 5배 크기(104만㎢)인 파타고니아 대평원이다. 최대 풍속이 초속 60m에 이를 만큼 바람이 심해 ‘바람의 땅’으로 불린다. 거주지로는 부적합하지만 등반가들의 꿈인 피츠로이산을 비롯해 페리토모레노 빙하 등이 있어 많은 이들이 꼽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이 지역이 유명해진 것은 동명의 글로벌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덕분이다. 창업자는 미국 암벽 등반가 출신의 이본 쉬나드(84)다.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암벽 등반 장비가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를 차린 그는 아웃도어 의류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1973년 사명을 파타고니아로 바꿨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때 북한산 암벽 루트를 개척해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2001년 미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프라이데이에 파타고니아가 뉴욕타임스에 실은 광고 문구다. 소비만능주의가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니 필요한 것만 사라는 의미다. 이 광고에는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ESG)을 강조하는 쉬나드의 경영 철학이 반영돼 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 원단과 유기농 면만 사용한다. 1985년부터는 매년 매출의 1%를 기부하고 있다. 남미 파타고니아에서의 댐 건설 반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가기념물 지정 해제 반대 등 환경보호 활동에도 앞장서왔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파타고니아 제품이 고가임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쉬나드가 지난 14일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를 위한 새 계획을 밝혔다. 그는 파타고니아 웹사이트에 올린 ‘이제 지구만이 우리의 유일한 주주다’라는 글에서 “환경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면서 “우리만의 방법을 창조했다”고 썼다. 그는 매각이나 기업공개 대신 가족 소유의 비상장 지분(30억달러 규모) 100%를 비영리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향후 재단 이익은 사업확장이 아닌 기후변화 대응에 온전히 쓰이게 된다. 자선활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평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쉬나드의 도전이 기후변화 위기에 둔감한 세상에 경종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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