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강원 강릉에서 한·미 군사훈련 중 추락한 현무-2C 미사일 낙탄이 군 부대 골프장뿐 아니라 유류저장고 인근에 떨어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또 두 시간 뒤 군이 동해상으로 발사한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 2발 중 1발은 추적신호가 끊겨 표적에 명중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군은 이 같은 사실을 일주일이나 감추고, 들통난 뒤에도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날로 커지는데 군이 제대로 대응할지 걱정된다.
군은 당초 현무가 낙탄한 직후 낙탄 경위와 지점 등을 공개하지 않아 의문을 남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낙탄이 당초 군 설명과 달리 유류저장고 주위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 현장을 찾은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현무-2C) 추진체 낙탄 지점에서 불과 10m 거리에 유류고 밸브와 다수의 유류관 시설이 있다”면서 추진체가 저장고에 불을 댕겼을 경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밝혔다. 에이태큼스 발사 실패는 더 심각하다. 이는 유사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원점타격하는 킬체인의 핵심 무기체계다. 그런데 군은 발사에 실패해놓고 이를 숨긴 채 “도발 원점을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를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더 답답한 것은 군의 대응 태도다. 군은 13일 “(군이 미사일 발사 실패를 은폐했다는 야당의 폭로는)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했다.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으니 은폐가 아니라는 식이다. 에이태큼스 추적 실패에 대해서는 ‘동해상으로 발사하는 것이 목적이지 애초부터 목표물 명중이 목표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지난 12일 북한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발사 사실도 북한이 발표한 뒤에야 공개했다. 우리의 미사일 탐지 능력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다고 해명했지만 일관성 없는 처사라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 군에 불리한 내용은 숨기고 보자는 식의 대응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최근 북한의 핵 위협이 점점 노골화하고 고도화하면서 정확한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군 기강 해이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다고 한다. 평소 미사일 정비를 제대로 못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 한편에서는 책임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유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다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더 이상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사실을 밝혀야 한다. 미사일 발사 과정과 은폐·축소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책임자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
'이무기가 쓴 기사 > 경향신문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황제 시진핑’ 더 강경해진 중, 정밀한 대응 필요하다(221024) (0) | 2022.10.23 |
---|---|
[사설] 3연임 결정 당 대회서 대만 무력사용 불사 선언한 시진핑(221017) (0) | 2022.10.17 |
[사설] 국감에서도 ‘극우·반노조’ 발언으로 무자격 드러낸 김문수(221013) (0) | 2022.10.12 |
[사설] 한·미 훈련·핵확장 맞서 전술핵 대응 능력 과시한 북한(221011) (0) | 2022.10.10 |
[사설] 노벨평화상, 푸틴·러의 반민주·인권탄압 경고했다(221008) (0) | 2022.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