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지구의날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도로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미국이 기후변화 리더십을 회복한다며 파리기후변화협정에 재가입해 의미가 컸다. 회의 바로 전날에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 101명은 정상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화석연료 확산금지조약(FF-NPT) 체결을 촉구했다. 화석연료를 감축하기 위한 국제조약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화석연료의 비확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지만, 당시 이 제안은 크게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화석연료 NPT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착안했다. 1968년 체결된 NPT는 미국과 러시아가 5대 핵무기 보유국(미·러·영국·프랑스·중국) 외에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후 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핵무기의 전 지구적 확산을 막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화석연료 NPT도 국제조약을 통해 화석연료를 체계적으로 등록·통제·관리함으로써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화석연료 신규 채굴과 개발을 금지하고, 화석연료 생산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며, 재생에너지 전환과 화석연료 탈피를 위해 정의로운 전환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투발루의 총리가 화석연료 NPT 체결을 다시 제안했다. 같은 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도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이를 제안한 바 있다. 두 나라는 화석연료 사용으로 피해를 직접 받는 기후변화 취약 20개국(V20)이다. 울릉도 3분의 1 면적에 인구가 1만1800명(2020년)인 투발루는 평균 해발고도가 2m이다. 연평균 해수면 상승 높이가 3.9㎜로, 100년 후면 전 국토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 지금도 바닷물의 잦은 범람으로 농사가 안 돼 채소를 구하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현실을 감안하면 약소국 투발루의 제안이 COP27에서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교황청과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 의회와 세계 10여개 도시, 81개국 과학자 2185명이 이미 화석연료 NPT를 승인했다. 기후위기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피해자의 호소를 가해자인 강대국들이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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