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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29]영원한 갑질인생(2016.02.16ㅣ주간경향 1163호) “평생을 갑으로 살아온 사람의 당연한 선택 아닐까.” 최근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안대희 전 대법관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그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험지 차출론’에 부응해 서울 마포 갑 예비후보로 등록한 직후였다. “대법관까지 한 사람이 뭐가 아쉬워 국회의원을 하려 할까” 하는 안타까움이 대화를 이끌었다. 결론은 “그거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였다. 모두가 동의했다. 지인들과의 대화는 검사와 판사의 차이로까지 나아갔다. 결국 검사가 판사보다 정치적 야망이나 특권의식이 더 클 수 있다는 데 이르렀다. 평생을 갑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낮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둘째, 갑이 되지 않으면 불안하다. 안 전 대법관만큼 이 조건에 맞는 이도 드물다. 서울법대 .. 더보기
[편집실에서28]“얼마나 답답 하시면…“ 화법 유감(2016.02.02ㅣ주간경향 1162호) 박근혜 대통령의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 참여에 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관제’ 냄새가 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야당은 대통령의 행위를 “관제 서명”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의 담화 발표를 시작으로 재계의 동참 발표, 대통령의 서명, 관료와 대기업의 잇단 참여가 이어지면서 정부의 압박에 의해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이 앞장섰는데 관제와 관치에 익숙한 관료와 기업들이 따라가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일 테다. 중·고교 시절을 독재정권 시절에 보낸 50대라면 박제된 관제의 추억이 되살아나 몸이 떨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청와대는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했다고 강조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대통령이 개인 차원.. 더보기
[편집실에서27]잘못 겨눈 풍자의 칼끝(2016.01.26ㅣ주간경향 1161호) 기억하는가. 지난해 1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 모독 만화를 실었다는 이유로 테러를 당한 프랑스 만평 전문지 를. 그리고 지난해 9월 난민선 사고로 숨진 3살배기 시리아 아이 아일란 쿠르디를. 언론 및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과 난민사태의 심각성을 죽음으로 보여준 사례들로, 세계는 연대와 애도를 보냈다. 그렇다면 가 쿠르디의 죽음을 만평의 대상으로 삼아 조롱한 사실을 아는가. 최신판은 ‘이민자’라는 제목으로 쿠르디를 등장시켰다. 만평은 쿠르디 시신 모습과 함께 ‘꼬마 아일란이 자라면 무엇이 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아래에는 두 손바닥을 내민 남성 두 명이 달아나는 두 여성을 쫓아가는 그림이 있다. 그 밑에는 ‘독일에서 엉덩이를 더듬는 사람’이라는 글이 있다. 이 만평은 쿠르디와 지난해 마지막 날 밤 .. 더보기
[편집실에서26]용서 아닌 책임을 추궁해야 할 때(2016.01.19ㅣ주간경향 1160호)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이에게 찾아와주시고, 그 많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그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자식을 잃은 엄마는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 면회를 갔다가 하나님에게 죄를 용서 받았다며 편안하게 말하는 가해자를 보며 몸을 떨고 돌아서 나온다. 그러고는 절규한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를 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이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이 평화롭다는데…, 이미 하나님이 용서를 하셨다는데 어떻게 내가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어떻게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용서 받고 구원을 받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한·일 위안부.. 더보기
[편집실에서25]10억엔이란다(2016.01.12ㅣ주간경향 1159호) 시인 곽재구는 1960~70년대에 만연했던 일본인의 한국 기생관광 모습과 감상을 시 ‘유곡나루’에서 이렇게 그렸다. ‘육만엔이란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버스 타고/ 부산 거쳐 순천 지나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엔이란다./…/ 육만엔이란다, 낚시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몸 풀고 나면/ 긴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서비스 볼 만한데/ 나이 예순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아이스박스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맑은 물 값이 육만엔이란다.’ 3박4일 풀코스 6만엔. 어디 섬진강과 순천 일대에서만 그랬을까. 외화벌이 목적으로 일본인 관광을 장려한 게 정부였으니, 3박4일 풀코스 .. 더보기
[편집실에서24]2016년,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2016.01.05ㅣ주간경향 1158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이름만 들으면 1980년대 ‘헤이’ ‘나탈리’라는 노래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헷갈릴 수 있겠다. 세련된 훈남 스타일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는 달리 그는 말총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새가 특징이다. 외신을 보면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다. 가수는 아니지만 최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오랜 긴축으로 실의에 빠진 스페인 서민들에게 희망가를 불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창당 1년 11개월 만에 치러진 첫 총선에서 제3당이 되는 역사를 썼다. 포데모스는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는 말 그대로 해냈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의 힘은 어디에서 .. 더보기
[편집실에서23]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2015.12.29ㅣ주간경향 1157호) 살풍경한 2015년 세밑에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듣는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 아 대한민국, 아아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아아 대한민국….”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정태춘의 목소리가 칼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1990년부터 25년간 듣고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노랫말 속의 풍경이 현재에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25년 전 정태춘이 부른 노래 속의 대한민국과 결코 다르지 않다. 25년 전 대한민국은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로 넘쳤다.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 더보기
[편집실에서22]타이밍의 역풍(2015.12.22ㅣ주간경향 1156호)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쉽게 말하면 “그 시간에 거기 있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뜻이다. 피해자는 “재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는다. 이 표현이 떠오른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다. 하나는 가 95년 만에 처음으로 1면에 사설을 실었다는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다. ‘전염병 같은 총기 확산’이라는 제목의 지난 5일자 1면 사설은 총기규제에 무책임한 정치권과 무관심한 유권자들을 질타하며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덕적으로 분노할 일이며 국가의 치욕이다.” “총기 확산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더보기
[편집실에서21]두 딸 이야기(2015.12.15ㅣ주간경향 1155호) 두 딸이 있다. 한 명은 갓 태어났고, 한 명은 환갑을 훌쩍 넘겼다. 두 딸 모두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점이 닮았다. 덕분에 갓난아기의 앞날은 창창하고, 다른 한 명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태평양 양편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큼 두 딸의 차이는 크다. 가장 큰 것은 두 딸을 바라보는 내 감정이다. 한 명에게서는 희망과 감동이, 다른 한 명에게서는 절망과 분노가 느껴진다. 갓난아기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세상에 나왔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출생 선물은 ‘통 큰 기부’였다. 기부액은 무려 약 52조원이나 된다. 그가 직접 받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자산의 99%를 일생 동안 기부하겠다고 온 세계에 약속했다. 선물에는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담겨 .. 더보기
[편집실에서20]복면 벗기기(2015.12.08ㅣ주간경향 1154호)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과 눈웃음 짓는 듯한 눈매, 그리고 양쪽 끝이 위로 치솟은 콧수염과 세로로 한 줄로 난 턱수염. 가만히 보면 전체적으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 얼굴의 주인공은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410년 전에 영국 국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실존 인물이다. 그 후 영국에서는 국왕의 무사와 암살음모 재발 방지를 위해 그의 상을 태우는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최근 ‘11·13 파리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IS)에 사이버 전쟁을 선포한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 덕분에 가이 포크스가 다시 유명세를 탔다. 가이 포크스가 축제 속 인물에서 현대적 의미로 되살아난 계기는 약 10년 전쯤 상영된 영화 덕분이다. 영화의 주인공 브이가 이 가면을 쓰면서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이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