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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49]EBS에 뻗친 검은 손(2016.07.12ㅣ주간경향 1184호) “교육부가 EBS를 관리해야 한다.” “EBS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왜곡한 점이 많다.” EBS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게다. 전자는 새누리당 4선 한선교 의원의 말이다. 후자는 보수단체 자유경제원이 EBS에 항의하기 위해 보낸 공문 내용이다. 공통점은 EBS의 특정 프로그램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살펴보자. 우선 한 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6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이준식 부총리에게 “EBS가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면서 위의 말을 했다. 이 부총리는 “EBS는 독립적 기관이기 때문에 관리한다는 말씀을 드리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한 의원은 “그게 문제”라며 “지금 말씀처럼 헐렁헐렁하.. 더보기
[편집실에서48]그릇된 ‘미생지신’에 갇힌 대통령(2016.07.05ㅣ주간경향 1183호)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 아니겠느냐.” 2010년 1월 중순,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한창일 때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간 논쟁이 벌어졌다. 정 대표가 불을 질렀다. 정 대표는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미생(尾生)에 비유했다. 미생은 고사성어에 나오는 인물이다.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익사해 흔히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하는 사람을 빗댈 때 원용된다. 발끈한 박 전 대표는 나흘 뒤 반격했다. “이해가 안 된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미생은.. 더보기
[편집실에서47]샌더스 정신의 실천자들, ‘버니크래츠’(2016.06.28ㅣ주간경향 1182호)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도 끝나면 그 여운이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14일 끝난 11월 미국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 드라마도 그럴 것이다.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다윗(버니 샌더스)이 골리앗(힐러리 클린턴)을 이기는 반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물론 반전은 없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여운이 짙다. 주연보다 조연이 빛난 드라마였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쉬움이 커서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샌더스의 역할은 흥행을 돕는 분위기 메이커에서 끝나는 걸까. 미국과 전 세계를 들썩였던 샌더스 돌풍도 경선 종료와 함께 사라질까. 민주당은 샌더스 효과를 어떻게 계승해 대선 승리를 이끌 것인가. 샌더스 지지자들은 그의 유산.. 더보기
[편집실에서46]싸우지 않고도 여성들이 이기는 방법(2016.06.21ㅣ주간경향 1181호) 이번호 마감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 퇴근 버스에서 후배 여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깜깜하고 까마득한 기분… 살아있다는 생동이 아닌 살아남았다는 생존,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다른 세계의 감각이었다. …지난 몇 주간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이름 지을 수 있는 감각들이 무기력했고 슬펐고 무서웠다.” 공감의 표시로 ‘좋아요’를 어느 때보다도 꾹 눌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날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악몽 속에 사는 동안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은 계속 일어나도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니. 그 직전에 또 다른 후배 여기자가 글을 올렸을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 여교사였다면 이렇게 할 수 .. 더보기
[편집실에서45]스크린도어 안팎과 그 사이 어디에도 없는 자들(2016.06.14ㅣ주간경향 1180호) 지하철역에 처음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을 때 ‘그 기준이 뭘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 내 사고를 계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으니 안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용객이 많은 역이 0순위였을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불온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었다. 혹시 지역 차별은 없을까. 힘 없는 동네 역이 힘 센 동네 역에 밀리는 상황 말이다. 스크린도어에 붙은 광고판을 보면 돈 거래가 설치 순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을 더 더듬어 보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에는 ‘안전선’이라는 게 있었다. 선로에서 조금 떨어진 플랫폼에 그어진 노란색 선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안전선 안과 밖이 헷갈린 것이다. 열차가 도착할 때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4]‘팔할’의 도(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 왜 ‘팔할’이었을까. 학창 시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자화상’ 시구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를 읽고 든 의문이었다. 칠할도 구할도 아닌 팔할. 성찰의 근거가 뭔지는 모르지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당 식으로 풀면 노력이 구할구푼이다.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18세기 문인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소개한 (2015, 북드라망)이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스스로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이덕무의 방이 작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방을 넓히라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3]한강이 온다 한들(2016.05.31ㅣ주간경향 1178호)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을 찾았다. 그의 책 세 권을 샀다. . 평소 유행 대열에 끼는 걸 꺼리는 나로서는 일탈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마도 호기심에 따른 충동이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두어 달 전 그가 이 상 후보 13명에 뽑히고 한 달 전 최종후보 6명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비록 관심은 갔지만 책을 사야겠다는 간절함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와 를 내리 읽었다. 완전히 한강에 빠져버렸다. 그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행동했을 법하다. 축하할 일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 더보기
[편집실에서42]빼앗긴 봄을 되찾자(2016.05.24ㅣ주간경향 1177호) 올해 봄부터 외출할 때 생긴 습관이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이다. 미세먼지 상태가 ‘나쁨’이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창문도 열지 않는다. 출퇴근할 때는 마스크를 쓴다. 가방에는 비상용 마스크(KF80)가 준비돼 있다. 미세먼지 탓에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좋은 봄날을 완상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크다. 몇 주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고교생 딸과 봄나들이 갈 요량으로 토요일에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예약까지 마치고 마감에 열중하던 금요일 밤, 아내가 전화를 했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수준이라서란다. 딸과의 여행에 한껏 들떠 있었지만 딸아이의 건강과 맞바꿀 수는 없어 결국은 포기했다. 딸은 만성 아토피에.. 더보기
[편집실에서41]아름다운 퇴진의 조건(2016.05.17ㅣ주간경향 1176호)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의 비극’. 영국 주간지 최신호 제목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 공화당은 물론 미국인에게 재앙이 될 거라는 우려의 표현이다. 이달 초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그에 대한 불안감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민주당으로서는 조급해진 것 같다. 민주당도 이 기회에 힐러리 클린턴으로 후보를 확정해 ‘클린턴 대 트럼프’ 대결구도를 만들어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양자 대결 시 클린턴이 승리할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려면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버니 샌더스다. 클린턴 측과 민주당의 바람대로라면 공은 샌더스 손에 있는 셈이다. 클린턴과는 결이 다른 진보 의제로.. 더보기
[편집실에서40]사라진 28쪽, 사라진 7시간(2016.05.10ㅣ주간경향 1175호) 15년이 지났지만 9·11 테러를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들은 많다. 대표적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9·11은 알려진 테러리스트 19명만의 독자적 소행인가, 아니면 도움을 준 배후국이 있는가. 물론 방점은 후자에 찍혀 있다. 그리고 배후국으로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목됐다. 물론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결정적 증거로 거론돼 온 게 있다. 이른바 ‘사라진 28쪽’이다. 9·11을 조사한 미국 의회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가운데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말한다. 800쪽이 넘는 보고서 가운데 비밀에 부쳐진 분량이 28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단어로 7200개쯤 된다고 한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보 총책임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에게 공개 여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