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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9]훔쳐보기 유혹(2015.09.15ㅣ주간경향 1143호)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목적으로 원형감옥을 고안했다. ‘파놉티콘(panopticon)’이다. ‘모두(pan)’와 ‘본다(opticon)’는 그리스어를 합성한 것이다. 벤담이 그린 것은 원형감옥 중앙에 감시탑이 있고, 감시자는 그 탑 안에서 전체 죄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감시자가 있는 탑 안은 어둡고, 죄수들이 갇혀 있는 방은 환하게 돼 있어 죄수들은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낳기 위한 이 같은 구조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를 낳은 벤담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벤담의 계획은 당시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감시 개념은 건축을 넘어 철학적 고찰 대상으로 확장됐다. 영국 소설.. 더보기
[편집실에서8]‘난워킹 리치’와 ‘난, 워킹 리치!’(2015.09.08ㅣ주간경향 1142호) “‘워킹 푸어(Working Poor)와 난워킹 리치(Non-working Rich)가 함께 증가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이는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미국의 가치를 훼손해 결국은 미국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낸 버클리대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지난 3월 말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워킹 푸어와 난워킹 리치의 증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10대 부자 가운데 6명은 자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라고 주장하면서 월마트 가문의 재산이 미국 하위 40%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리고 2007년부터 2061년까지 상속될 자산규모는 59경 달러라는 보스턴대 연구자료를 인용했다. 당연히 반발이 나왔다... 더보기
[편집실에서7]벌레사회와 족제비의 지혜(2015.09.01ㅣ주간경향 1141호) ‘큰 구렁이가 창고 옆 족제비 구멍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족제비 새끼를 삼키고 배가 불룩해져 뜰로 기어 나온다. 암컷 족제비와 수컷 족제비가 깜짝 놀라 순식간에 구렁이 앞에 오더니 번갈아가며 땅을 파는데, 그 구덩이는 깊숙하고 길쭉하니 대나무 홈통 같다.그런 다음 구덩이의 양 끝을 제 몸길이에 맞춰 수직으로 파내려가더니, 암컷과 수컷이 그 속에 숨는다. 구렁이가 구불구불 기어서 족제비가 파놓은 구멍으로 들어간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틈이 없어 딱 들어맞는다. 얼마 뒤, 구렁이는 움직일 수도 없고 배를 뒤집을 수도 없어 드디어 죽고 만다. 아마도 두 마리의 족제비가 몰래 깨문 것 같다. 마침내 족제비가 구멍에서 나와 구렁이의 배를 가른다. 족제비 새끼 네 마리가 죽어 있는 듯하나 몸은 온전하다. 새끼들을 .. 더보기
[편집실에서6]롯데 드라마와 극장정치(2015.08.18ㅣ주간경향 1139호) 지금 한낮의 무더위와 열대야를 식힐 블록버스터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해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하고 있는 다. 황제경영을 해 와 ‘神격호’로 불린 창업주 아버지가 늙고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 두 아들이 벌이는 경영권 쟁탈전을 담고 있다.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재벌의 삶과 인식’ ‘재벌가의 복잡한 혼맥’ ‘재벌가와 정치권의 결탁’ 등 흥행 요소는 모두 갖춰져 있다. 여기에다 빠져서는 안 되는 막장 드라마는 물론 한국인을 자극시키는 반일감정 요소도 있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흥행 성적은 가히 돌풍이라 할 만하다. 상영 일주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를 보이고 있다. 언론은 이 영화의 흥행 소식을 매일 주요 뉴스로 다룰 정도다. 여야와 정부 할 것 없이 정치권도.. 더보기
[편집실에서5]국정원의 국민 길들이기(2015.08.11ㅣ주간경향 1138호) “길들인다는 게 뭐지?” 생텍쥐페리의 동화 에서 길을 떠난 어린왕자가 도중에 만난 여우에게 묻는다. 여우가 답한다.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잊혀진 것들인데…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학창 시절 를 읽으면서 ‘관계’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길들이다’라는 단어를 떠올린 까닭은 국가정보원의 해킹 의혹 사건 때문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의 진실과 실체가 밝혀질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가져올 결과다. 바로 국정원의 ‘국민 길들이기’ 효과다. 국가 정보기관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정보를 독점한다. 국민들도 어느 정도 이를 용인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파국으로 끝났다. .. 더보기
[편집실에서4]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2015.08.04ㅣ주간경향 1137호) 2년 전 가을, 주일 미군기지 탐방차 오키나와 섬을 찾았을 때 제주 강정마을이 문득 떠올랐다. 기지 이전 논란의 중심에 있는 후텐마 미군기지를 둘러본 뒤 나오다 한쪽 입구에서 기지 이전운동을 벌이던 주민 6명을 봤을 때였다. 버스로 이동하며 잠깐 스쳐지나듯 본 장면이었지만 잊혀지질 않았다. 비록 소수였지만 뉴스로만 보던 현장을 직접 봤다는 감회와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시위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키나와 현정부는 지금 섬 북쪽에 후텐마 기지를 옮기려는 공사의 허가를 취소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말 후텐마 기지를 현 바깥으로 이전할 것을 공약한 오나가 타케시(翁長雄志)가 현지사에 당선되면서 벌이진 일이다. 어쩌면 아베 내각과의 정면대결이 불가피할지도 모르고,.. 더보기
[편집실에서3]1000원의 행복(2015.07.28ㅣ주간경향 1136호) 며칠 전, 경복궁 옆에 있는 한 카페에 들렀다. 지인들과 저녁을 먹은 뒤였다. 유명한 커피콩 생산국의 원두로 만든 커피와 다른 음료를 파는 가게였다. 가장 싼 커피 가격이 6000원. 평소 커피전문점을 자주 가지 않고, 가더라도 1500~2000원짜리 아메리카노만 고집해온 나로서는 놀랐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체면도 있었고, 한 번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최저임금보다도 비싼 커피를 마시는 죄책감도 동시에 일었다. 그 탓인가. 아무리 늦은 밤에 커피를 마셔도 잘 자던 평소와 달리 그날 밤은 전전반측하며 거의 밤을 새웠다. 많은 상념이 오갔다. 커피값보다도 못한 인간이라니,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가…. 만약 커피값이 비싼 이유가 알바생 시급 인상을 위한 .. 더보기
[편집실에서2]유승민과 송우석(2015.07.21ㅣ주간경향 1135호) 두꺼운 법전 속에 갇혀 있던 헌법 조항이 다시 한 번 책 밖으로 나왔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사퇴의 변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3년 개봉된 영화 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국가보안법 위반을 다루는 법정에서 고문경찰 증인과 ‘국가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인용한 헌법 1조 2항만큼이나 뭉클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송우석의 열변의 압권은 다음 말이었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헌법 1조 1항 언급으로 지난 13일간 속이 검게 탔을 유 전 원내대표의 심경을 어느 정도 헤아려 볼 수는 있지만 본심은 여전히 알 수 없다. 유 전 원내대표를 개인적으.. 더보기
[편집실에서1]선택(2015.07.14ㅣ주간경향 1134호)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스스로 선택할 수도, 선택당할 수도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 결과는 예측불허다.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야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의도한 선택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타인의 선택은 나머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당사자에게는 선택이 죽고사는 문제일 수 있다.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거나, 대의나 전체를 생각하지 않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선택의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나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상밖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선택이든 과정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누구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만약 연기금에 투자한 돈이 사람을 죽이는 폭탄 제조기업에 투자돼 돈을 번.. 더보기
[월드 프리즘22]‘블러드 머니’에 투자된 미·유럽의 퇴직연금(2015.07.07ㅣ주간경향 1133호) 지난 6월 24일, 미국 매체 리포티들리는 미국과 유럽의 퇴직연금과 국부펀드, 투자은행 등이 예멘 공격에 활용된 폭탄 제조회사에 투자한 사실을 보도했다. 개인이 수익을 위해 투자한 돈이 부지불식간에 ‘블러드 머니’가 되는 예다. 블러드 머니(Blood Money). ‘피 묻은 돈’이라는 뜻이다. 사전을 보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번 돈’이나 ‘살해된 사람의 유족에게 주는 위자료’로 풀이돼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주로 전자의 의미로 쓰인다. “세계 유수의 군수기업이 전쟁을 통해 돈을 번다”는 언사에서 ‘번 돈’을 우리는 블러드 머니라고 부른다. 때문에 블러드 머니는 세계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돼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월 21일(현지시간) “무기 제조업자나 무기산업 투자자는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