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과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세계사회포럼(WSF)은 주류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WSF는 현 세계의 지배원리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공개적으로 반대한다. 자본의 논리에 지배받은 주류 언론이 반길 리 없다. WSF 참석자 가운데 관심을 끌 만한 유명인사들이 많지 않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유명인사 축에 드는 이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등 주류 언론이 좌파로 딱지붙인 인물들이다. 일반 참석자들도 급진 좌파에서 사회개혁운동가, 인권운동가, 환경보호 활동가 등 주류 언론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인사’들이다.
브라질 열대우림인 아마존 벨렝에서 1일 끝난 올해 행사는 예년과 달랐다. 외신에 따르면 행사에 참석한 국가 정상 수는 2명에서 5명으로 늘었다. 다보스포럼의 단골손님이었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모습을 드러냈다. 금융위기가 낳은 세계 경제위기로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체제가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덕분이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WSF의 모토가 이번처럼 잘 맞아떨어진 적이 없을 듯하다. 이들이 그리는 ‘다른 세계’의 모습은 그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차베스를 비롯한 좌파 지도자들은 반세계화·신자유주의 실패를 외치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강조했다. 일반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브라질 인디언인 미구엘은 “땅과 의료, 교육을 쟁취하기 위해서”, 요르단강 서안에서 온 팔레스타인 언론인 무아마르 오라비는 “이스라엘 정착민에게 대항하는 동포들의 투쟁을 위한 연대를 위해서” 참석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에서 온 앤드루 리플링거는 “금융위기 때는 환경은 뒷전”이라며 환경보호를 들었다. 멕시코에서 온 대학생 루이스 미구엘 페르난데스 베가는 “(WSF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밑바닥에서부터 나오는 희망의 외침”이라고 말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이번 행사를 “좌파의 우드스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매일 내리는 비 때문에 행사장 일대는 진창이 되지만 음악과 흥겨움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이 같은 목소리는 행사가 끝나면서 시들 수밖에 없다. 축제가 끝나면 여운을 안고 다음 행사를 기다리는 이치다. 더욱이 WSF는 대안을 만들어내거나 세력화를 이뤄내는 정치기구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룰라 대통령의 발언이 관심을 끈다. 그는 “다른 세계는 단지 가능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다른 세계에 대한 인식 수준을 ‘가능성’에서 ‘필요성’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이다. 그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 수사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융위기로 고통받은 사람들 가슴 속에는 이미 다른 세계에 대한 필요성이 움트고 있다. 실제로 변화의 조짐은 현실정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방주의 외교로 세계에 군림했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 비해 남의 말에 먼저 귀기울이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집권 2주차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변화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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