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보면 영원히 바위를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푸스가 떠오른다. 선봉에 서서 군중을 이끄는 모습에선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보다 투사의 강인함이 느껴지지만, 그만이 아는 불안한 그림자가 불굴의 투지 뒤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시지푸스처럼 포기하지 않고 부조리를 삼키며 묵묵히 나아갔다. 그러기를 약 22개월. 그동안 29년을 함께 한 남편은 떠났다. 주변에 남은 것은 망가진 몸과 빚더미, 그리고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좌절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시지푸스이기를 거부했다.
5월28일, 미국 반전운동의 상징인 ‘평화의 엄마(Peace Mom)’ 신디 시핸(50)이 운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날은 미국의 현충일(Memorial Day)이자 3년여전 이라크에서 숨진 아들 케이시의 28번째 생일이다. 2005년 8월6일, 아들과 같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시작한 반전운동이건만, 전쟁은 3400여명의 젊은이의 생명을 앗아간 것도 모자라 더 많은 목숨을 달라고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이라크 공격을 감행한 조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이, 믿었던 민주당마저 그를 배반했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갈 이라크 전비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민주당을 향한 시핸의 분노는 5월26일 쓴 ‘민주당 의회 앞으로 보내는 편지’에서 폭발했다. 그는 민주당의 전비법안 지지에 대해 “축하한다. 당신들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대학살을 자행할 몇 달의 시간을 더 벌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 아니다. 내가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네가 원하지 않는 한 그런 나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는다”며 미국에 작별을 고한다. 어쩌면 시핸에겐 민주당과의 결별은 이라크전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시핸의 분노는 민주당에만 그치지 않았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꿈쩍도 않는 거대한 바윗돌과 같은 ‘양당제도’를 겨냥했다. 그는 스스로 ‘미국 반전운동 얼굴마담으로서의 사직서’라고 부른 글에서 양당제도의 한계를 신랄히 비판했다. “우리가 부패한 양당제도의 대안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의 ‘대의공화국’은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며, 결국 ‘균형과 견제’가 존재하지 않는 파시스트 연합의 쓰레기 국가가 되는 것이다.”
좌절의 시간 속에서도 시핸을 단련시킨 것은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었다. 시핸은 반전운동을 시작한 후 “우리같이 나약한 사람들이 정말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들이 죽기 전까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많은 이의 지지를 받는 한 사람의 힘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시핸이기에 결코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그는 ‘사직서’에서 “미 제국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체제 안팎에서 일했던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고 단호히 말했다. 한 언론인은 이런 시핸을 ‘제퍼슨식 민주주의자’라고 불렀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 쉽게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시핸은 여전히 국민들의 뜻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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