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직후 미국민들의 애국심은 절정에 달했다. 알카에다와 사담 후세인을 향한 분노는 이글거렸다. 그동안 ‘눈엣가시’를 없애지 못해 안달이 난 부시 행정부에 애국심과 분노는 더할 나위 없이 써먹기 좋은 수단이었다. 언론도 귀찮은 방해꾼이 아니었다. 언론 스스로 애국심 열기와 보도경쟁에 사로잡혔다. 후세인이나 대량살상무기(WMD) 정보만 언론에 살짝 흘리면 나머지 일은 착착 진행된다. 언론이 충실히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 정보의 사실 여부는 상관없다.
후세인 제거를 위한 부시의 이라크 침공 드라마는 2002년 가을부터 본격화한다. 백악관 안에 ‘전쟁을 팔’ 마케팅 조직이 생긴다. ‘백악관이라크그룹(WHIG)’이다. 판매원은 부시의 정치고문인 칼 로브와 비서실장 앤드루 카드,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 부통령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 등이다. 이들이 파는 물건은 WMD와 후세인이다. 네오콘은 주요 체인망이었다. 나중엔 딕 체니 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세일즈맨으로 나선다. 언론도 ‘전쟁을 살’ 채비를 갖췄다. 정부가 손을 내밀기도 전에 언론이 먼저 치고나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라크 망명자와 미 중앙정보국(CIA)마저 버린 아흐메드 찰라비라는 사기꾼이 흘린 정보를 1면 머리에 등장시킨다. 주디스 밀러 기자가 선봉장이다. 망명자는 몸값을 높이기 위해 정보를 과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사실 확인에 관심이 없다. 언론보도의 제1 철칙인 사실 확인은 특종의 방해물일 뿐이다. 경쟁사인 ABC·CBS·NBC 등 공중파 방송과 신문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백악관의 예측대로, 언론이 ‘자가발전’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백악관의 세일즈 전략은 강화된다. 강경파 체니가 앞장선다. 9·11 테러 1주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 그는 참전군인 행사에서 “후세인이 곧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운다. NYT도 이런 내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룬다. 체니는 곧바로 대담 프로에 나와 ‘1급 비밀’을 확인해 준다. 정부가 언론에 정보를 누설하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이를 확인해주는, 완벽한 ‘매매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 이라크 침공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이라크 침공 4년이 지난 2007년 4월 미 공영방송 PBS가 보도한 다큐멘터리 <바잉 더 워(Buying the war)>(
)의 내용이다. 여기엔 이라크전 팔기에 나선 부시 행정부에 말려들어 ‘전쟁을 산’ 미 언론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언론인들의 맹목적인 애국심, 언론사 간의 보도경쟁, 주류 언론의 여론 주도 폐해 등이 전쟁을 부추긴 요인으로 지목됐다. 언론계의 ‘블록버스터’인 NYT와 워싱턴포스트, 공중파 방송이 진실캐기를 외면할 때 정도를 간 비주류 언론도 있었다. 나이트 리더(Knight Ridder)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여론의 중심지인 뉴욕과 워싱턴에 들리지 않았다. 판매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스스로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할 때, 비주류 언론의 목소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지난 주말 미국의 이라크 침공 6주년(미국 시간 3월20일)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다시 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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