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업계 ‘빅3’가 이번주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2일(현지시간)까지 자구책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3일과 5일엔 청문회가 열린다. 자구책이 만족스럽다면 의회는 다음주 250억달러 지원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여러 이유 때문에 빅3 운명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최고경영자가 타고올 교통수단조차 뉴스거리가 될 정도다. 지난달 의회로부터 ‘도덕성 해이’라고 지탄받았음에도 이들은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청문회에 참석할 모양이다. 내 관심은 이보다 미 정부가 금융산업에 대한 구제방침을 빅3에도 적용할지 여부다. 미 정부는 지난 9월 양대 모기지업체 프레디맥과 패니메이를 국유화했다. 1주일 후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시켰다. 그 후 AIG, BOA, 씨티그룹 등엔 세금 수천억달러를 쏟아부었다. 과연 미 정부가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기준은 무엇인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0월20일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웰스파고가 3·4분기(7~9월)에 쓴 로비자금을 보도했다. 120만달러, 69만달러, 65만5740달러였다. 미 재무부는 며칠 전인 14일 메릴린치와 모건스탠리 각 100억달러, 웰스파고 2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WSJ는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구제금융과 로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암시했다. 금융계 로비가 이럴진대 자동차업계도 예외는 아닐 터이다.
대선 유세 당시 버락 오바마 캠프는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이색 행사를 제안했다. 경제고문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씨티그룹 고문)과의 리셉션 참가비는 2만8000달러, 정치적 멘토인 톰 대슐 전 상원 원내대표와의 리셉션 참가비는 2500달러, 예비 퍼스트레이드 미셸과의 리셉션 참가비는 2만8500달러, 외교정책담당 고문과의 저녁식사비는 1만달러…. 액면 그대로 선거자금 모금을 위한 행사일까. 아니다. 한 번 모임이나 식사비로 거액을 지불할 개인 후원자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로비스트를 위한 행사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 정치와 로비는 ‘바늘과 실’ 관계다. 선거에서 진 의원이 로비스트로 활동하다 다시 의회로 진출하는 게 다반사다. 문제는 로비스트가 제도 안으로 들어올 경우 부패를 낳는다는 점이다. 오바마는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안다. 그래서 대선 내내 로비스트에 휘둘려온 워싱턴 정치 개혁을 공언했다. 당선 직후엔 ‘로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백악관과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이익집단의 로비 공세에 시달릴 게 뻔하다. 이미 오바마 주변엔 로비스트들이 널려있다. 대슐 전 의원이 그렇다. 그는 차기 보건장관에 내정됐다. 루빈 경제고문 인맥들은 차기 경제팀 수장에 올랐다. 그를 씨티그룹 구제금융과 연결하는 것은 억측일까. ‘로비=구제금융’이라는 도식은 미 정치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을 기업가 중심의 일당 국가로 본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민주·공화당은 기업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두 당파일 뿐이다. 금융위기로 오바마의 개혁정책이 위축·실종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말한 희망을 믿고 싶다. 그리고 그의 개혁이 꼭 성공하길 바란다. 미국만 바라보는 한국 정치인을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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