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지구촌에서는 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이란 대선 불복시위(6월12일), 온두라스 쿠데타(6월28일),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유혈참사(7월5일) 등이다. 세 사건의 공통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굳이 들자면 모두 반(反) 서방국가라는 점 정도일 듯하다. 그럼에도 마치 한 몸에서 나온 돌연변이처럼 비슷하다는 착각이 든다. 그래선지 사건을 바라보는 마음도 편치 않다. 무엇보다도 ‘역사는 진보한다’는 명제에 의문부호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진행형인 이 사건들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향후 역사는 이 사건들을 어떻게 규정할까.
이란의 대선 불복시위 열기는 한 달이 지나면서 시들고 있다. 불씨마저 꺼진 것이 아닌가라는 분석도 나온다. 초기만 해도 테헤란 도심을 가득 메운 인파와 함성은 ‘제2의 이란혁명’을 기대하게 했다. 이제는 내재한 변화 욕구가 폭발하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왜 열기가 시들어가고 있을까. 이란 사태의 본질은 개혁파와 보수파 간 권력투쟁이다. 보수파인 이란 지도부가 개혁파의 요구를 들어줄 리 만무하다. 지도부의 강경대응은 당연하다. 아무리 자신의 신념이 강해도 목숨을 던질 순교자는 많지 않다.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강고한 신정체제가 변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개혁파의 기를 꺾고 있다.
온두라스 쿠데타는 역사의 퇴보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16년 동안 쿠데타가 없었던 중미에 쿠데타라는 유령을 되살려놓았다. 전세계가 쿠데타를 한목소리로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쿠데타로 쫓아내는 나쁜 선례가 될까 우려하는 것이다.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최고권력에 대한 기득권층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다. 온두라스 사법부와 입법부, 군부는 마누엘 셀라야 대통령이 좌파로 노선을 바꾸자 그를 축출했다. 온두라스 사태도 이 점에서 이란 사태와 마찬가지로 좌파와 우파 간 권력투쟁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역 맹주를 노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든 외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불길한 징조다.
우루무치 유혈참사는 앞의 두 사건과 달리 암담함과 좌절감이 앞선다. 마치 영원히 깰 수 없는 벽 앞에 선 느낌이다. 흔히들 민족과 종교가 연루된 문제에는 해법이 없다고 한다. 우루무치 참사가 그렇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중국 당국의 태도도 절망감을 깊게 한다. 갈등이 계속될수록 더 많은 피를 부를 수 있음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6월29일자에 20년 전인 1989년을 뒤돌아보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톈안먼 사태, 소련의 개혁개방, 덴마크의 첫 동성결혼 허용, 위성항법장치(GPS) 등장, 일본 거품경제 붕괴 시작 등 89년은 세계적인 파장을 몰고올 사건들을 참으로 많이 잉태했다. 타임은 그 해를 ‘세계를 바꾼 해’로 규정했다. 작은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사건들이 미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2009년을 뒤흔든 세 사건은 20년 후 어떻게 자리매김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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