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상상해보자.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반대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미 대통령이 됐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능했을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까.
오바마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그의 수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비판론자들 주장의 핵심은 ‘시기상조론’이다. 대통령 재임기간이 1년도 되지 않아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업적 평가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미 정가에서도 왈가왈부 중이다. 공화당 쪽에서는 그가 이뤄낸 성과보다 그의 스타 파워의 반영물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에서는 전쟁 중인 대통령은 평화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도 나온다. 언론 평가도 다양하다. 보스턴글로브는 “이번 수상은 미국의 귀중한 자산”이라면서 “이란·러시아·북한의 강경파 지도자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노벨위원회 위원들도 “오바마 수상에 문제없다”며 전례없는 홍보전을 펼치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선정은 역대로 논란을 불렀다. 베트남전 비밀 휴전협정 체결 공로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레둑토 전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원이 수상자로 선정된 1973년 평화상을 보자(레둑토는 수상을 거절했다). 평화상 수여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은 1년 반이나 더 지속됐다. 중동평화 협정 체결 공로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시몬 페레스·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가 수상한 94년 평화상은 어떤가. 중동평화는 여전히 다른 세상 얘기이지 않은가.
오바마의 평화상 수상이 이 두 사례보다 더 논란이 될 수는 없다. 솔직히 보자.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후보 마감일(2월1일) 11일 전에 취임했으니 절차에는 하자가 없다. 재임 기간이 9개월에 불과하지만 세계 평화에 적잖은 기여도 했다. 노벨위원회가 꼽은 “평화와 협력에 대해 그가 가져온 변화, 핵무기 감축 약속, 무슬림 세계와의 화해,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미국의 역할” 등 4가지만으로도 수상 자격이 있다. 2% 부족한가. 그렇다면 그가 미국 이미지 개선의 선봉장이었다는 사실은 어떤가. 이달 초 발표된 안홀트 Gfk 국가브랜드지수(NBI)에서 미국은 지난해 7위에서 올해 1위로 올랐다. 오바마 덕에 미국은 전임자 조지 부시 행정부가 만든 부정적 이미지를 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바마의 미래 가치에 의미 있는 평가를 했다는 점, 그것만으로도 그의 수상은 가치있는 일일 터이다. 발상 전환의 노벨평화상이라 부를 만하다.
한 번 더 상상해보자. 오바마가 골칫거리인 아프가니스탄전 전략과 관련해 추가 파병을 하지 않고 조속한 시일 안에 철군을 하겠다고 발표하는 모습 말이다. 아니면 오는 12월 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을 사양하고 좀 더 업적을 쌓은 뒤에 받으라”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충고대로 수상을 거부하는 장면 말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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