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노벨평화상 수락연설을 통해 ‘정당한 전쟁(just war)’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앞서 오바마가 3만명 증파를 핵심으로 하는 새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밝힌 터여서 곧바로 ‘아프간 전쟁은 정당한 전쟁인가’ 하는 논란을 낳았다. 오바마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전쟁은 특정 조건이 맞아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며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최후의 자위 수단일 경우, 군사력이 비례적으로 사용될 경우, 민간인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경우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의 역사에서 정당한 전쟁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바마가 정당한 전쟁 논리를 꺼낸 의도는 명백하다.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오바마는 이를 위해 비폭력주의자인 간디와 마틴 루터 킹마저 배격한다. “대통령으로서 국가 수호를 위해 그들의 사례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정당한 전쟁론은 이어진다. “악은 세상에 존재한다. 비폭력 운동은 히틀러 군대를 막을 수 없다. 협상으로는 알 카에다 지도자가 무기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조찬제 국제부 차장
정당한 전쟁은 형용모순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느냐는 논란 때문이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했듯,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Just and Unjust Wars)>을 쓴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에 따르면 정당한 전쟁 논리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이 때로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전쟁 수행은 언제나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대개 평화주의자들은 전자를, 현실주의자들은 후자를 거부한다. 왈저는 국가간 폭력이라는 ‘현실’로서의 전쟁은 분명히 존재하기에 우리는 전쟁에 관해 끊임없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민주시민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왈저에 따르면 아프간 전쟁의 ‘시작’은 정당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정당하지 않았다. 그는 오바마의 새 전략 발표 직후인 지난 3일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잡지 ‘디센트’에 여섯 가지 근거를 들었다. 충분한 군대를 파병하지 않았다, 군벌과 싸운 대리전이다, 나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전쟁 후 사회·경제 재건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았다, 부패한 아프간 정부를 지원하고 이에 의존했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등이다. 그는 ‘도덕적 이유’로 아프간 철군을 반대했다. 갑작스레 철군하면 아프간 국민들이 ‘불의’로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증파 및 철군 계획을 밝히면서 비로소 ‘오바마의 전쟁’이 됐다. 시작은 전임자가 했지만 성패의 심판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그 앞에 놓인 길은 1964년 ‘통킹만 사건’으로 베트남 전쟁에 본격 개입한 린든 존슨과 비교된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전임자가 시작한 전쟁을, 그것도 더 악화된 상황을 물려받았다. 증파를 결정함으로써 확전의 빌미도 만들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일로 확전 결정을 꼽은 점도 닮았다. 오바마는 존슨과 달리 철군 계획을 밝혔지만 그 이행 여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2010년 3월이면 아프간 전쟁은 미군이 참전한 가장 긴 전쟁으로 자리매김한다. 존슨의 확전 선언에서 리처드 닉슨의 공세 중단 발표까지 8년5개월을 끌었던 베트남 전쟁을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아프간 전쟁이 ‘부당한 전쟁’의 대명사인 베트남 전쟁의 전철을 밟을까. 2010년이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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