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형 화학무기 참사가 또 발생했다. 엊그제 시리아 북부 시리아 반군 장악지역에서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습으로 최소 80여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다쳤다. 사망자가 100명을 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30명·여성 20명이 포함돼 있다. 현지 구호단체 관계자의 증언과 공개된 사진을 보면 피해 어린이들은 경련과 동공 수축, 구토 등을 일으키다 숨졌다. 눈을 뜬 채 의식을 잃고 가설 병원에 누워 있는 아이들은 보기가 애처롭다. 공동묘지에 묻기 전 싸늘해진 9개월짜리 쌍둥이 시신을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울고 있는 아버지 사진을 보노라면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화학무기는 금지된 사린가스나 염소가스, 신경작용제 등으로 추정된다. 무고한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반인도주의적 범죄이자 중대 전쟁범죄 행위이다.
이번 공격은 2013년 8월 수도 인근에서 일어난 사린가스 공격 이후 최악의 참사다. 당시 10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흰 천에 싸여 일렬로 놓인 아이들의 시신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웅변해주고 있다. 국제사회는 당시에도 시리아 정부를 공격의 주체로 지목하고 조사를 벌였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소행으로 결론 내리지 않았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서명하고 보유 화학무기의 대부분을 폐기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추가 공격을 저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폐기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염소가스 공격이 몇 차례 있었고, 결국 이번 참사로 이어졌다. 만약 금지된 사린가스가 이번 공격에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면 국제사회의 시리아 화학무기 대응은 실패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진상 조사를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이슬람국가(IS) 퇴치에 협조하는 아사드 정권과 그 우방국인 러시아·이란을 묵인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참사를 계기로 태도를 분명히 했다. 안보리가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하면 독자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무고한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반인도주의적 전쟁범죄는 국제관계의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라면 결코 반인류 범죄를 관용해서는 안된다. 책임 방기는 더 큰 참사를 부른다. 지금 즉각 행동하는 것만이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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