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8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가족을 만나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대통령으로서 정부를 대표해서 가슴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피해구제를 위한 정부 예산 투입과 관련 법률 제·개정을 위한 국회 협력 요청 의사도 밝혔다. 2011년 4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가 확인된 이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피해구제 지원을 약속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이지만 정부의 존재이유를 보여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 해결을 강조해왔다. 지난 대선 때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국가 책임과 사과를 공약한 바 있다. 취임 후에는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하는 방안과 철저한 진상규명, 피해자 지원대책 및 재발방지책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문 대통령이 피해자를 만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 것은 약속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문 대통령이 밝힌 정부 차원의 대책이나 그간 취해온 조치들이 피해자와 그 가족이 느끼는 것과 간극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1일 피해구제위원회로부터 건강피해를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된 신청자에 대해 특별구제계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인정기준이 너무 협소하다며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어제 언급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책임자에 대한 엄벌과 진상규명을 위한 더 분명한 의지를 밝혔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정부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는 후속 조치 마련에 모든 정성을 쏟아야 한다. 정부가 어제 살균·소독제 등 살생물제품을 별도로 관리하는 법률을 마련한 것은 늦었지만 꼭 필요한 조치다. 문 대통령도 피해자와 가족이 겪은 애환을 들으며 이들이 정말로 원하는 바를 체감했을 것이다. 폐질환 이외 질병을 피해 대상에 포함하고 피해 인정 범위를 3·4단계로 넓히는 방안, 특별법을 개정하는 방법까지 적극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문 대통령이 밝힌 국가의 존재이유를 실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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