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건강과 직결되는 생리대 안전성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릴리안 생리대에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성분이 검출됐다는 소식 때문이다. 정부가 뒤늦게 문제의 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하겠다고 밝히고, 제조사는 환불하겠다고 했지만 파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릴리안 생리대 피해자들은 법무법인과 함께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집단소송 준비에 들어갔다. 소비자단체와 정의당은 시판 중인 생리대에 대한 전수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살충제 계란’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여성 소비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안일하게 대응했다. 생리대 안정성 문제는 1년여 전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릴리안 생리대 사용자들이 생리량이 줄고 생리불순이 생겼다며 불만을 호소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가 강원대 생활환경연구실 김만구 교수팀과 함께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시험 결과’를 발표하자 불안은 증폭됐다. 릴리안을 비롯한 국내 생리대 10종에서 유해물질이 22종이나 검출되고, 이 중에는 휘발성유기화합물도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물질은 장기간 노출될 때 신경과 근육 등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도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그사이 많은 여성들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천 생리대나 아기용 기저귀, 생리컵 등을 사용하는 식으로 대처해왔다. 안 그래도 비싼 가격으로 불만이 컸던 차에 안전성 문제까지 터지자 여성들의 분노는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가 커지자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지금 기준으로는 부작용 문제가 제기되는 생리대 판매를 중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위해도 검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빨리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늦었지만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현재의 품질검사로는 불안을 해소하기는커녕 불신을 키울 가능성이 더 크다. 품질검사는 품질관리 기준에 맞게 생산됐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릴리안은 2015년과 지난해 검사에서 적합판정을 받았다. 문제가 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은 규제 항목에 아예 없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의 유해성 판단은 내년이나 돼야 가능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사태가 심각한 만큼 정부는 여성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생리대 전수조사 요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가습기 살균제처럼 때를 놓쳐 사태를 키우는 우를 다시는 범해서는 안된다. 차제에 화장지나 기저귀, 물티슈 등 피부에 직접 닿는 생활품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모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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