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28일 시중에 판매 중인 일회용 생리대 전수조사를 한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처음 제기한 여성환경연대는 모든 유해성분을 조사하지 않은 성급한 결과라며 식약처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여성·환경단체들은 건강역학조사를 위한 서명운동은 물론 다음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부각시킬 태세여서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생리대 안전성 논란 이후 정부가 내놓은 첫 조사 결과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꼴이 된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무엇보다도 조사방법에 문제가 있음에도 안전하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데 있다. 식약처는 생리대에 들어 있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10종의 인체 위해성 평가를 토대로 조사했다. 84종의 휘발성유기화합물 가운데 생식에 문제를 주거나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벤젠과 톨루엔 등이다. 식약처는 대부분 품목에서 유기화합물이 나왔으나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휘발성유기화합물 일부는 간 등 생식과 관련이 없는 장기에 관한 독성 참고치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소비자들이 우려한 생리대가 생리불안에 미치는 인과관계를 밝히는 역학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식약처는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식약처는 이번 사태의 배경에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깔려 있는 만큼 조사는 물론 발표에 이르기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만에 하나 이번 발표가 업무 파악을 제대로 못해 잇따라 총리의 지적을 받은 류영진 식약처장의 독단에 따른 것이라면 더욱 우려할 만하다.
정부 정책의 핵심은 신뢰성이다. 이번 사례는 아무리 과학적 조사에 기반을 뒀다고 해도 결론이 신중하지 못하다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만 높일 뿐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런 식이라면 2차 휘발성유기화합물 전수조사나 인체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도 비슷한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의 생리불순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길 수 있어 역학조사로도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결코 쉽지 않다. 정부는 조사 결과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탓하기보다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조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무기가 쓴 기사 > 경향신문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청년 체감실업률은 최고인데 공공기관은 채용비리 (171019) (0) | 2017.10.18 |
---|---|
[사설]노벨 평화상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과 북핵(171009) (0) | 2017.10.08 |
[사설]실망스러운 수지의 변명과 대응(170920) (0) | 2017.09.19 |
[사설]생리대 불안 더 이상 방치 말고 전수조사하라(170825) (0) | 2017.08.24 |
[사설]미국 행태 지켜보겠다는 김정은, 대화 아니면 종말이다(170816) (0) | 2017.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