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시사주간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옛 소련 붕괴 후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안정적으로 이끈 지도자라는 점이 평가받았다. 실제로 푸틴은 집권 8년 동안 ‘강한 러시아’를 앞세워 이란핵과 코소보 사태, 미사일방어(MD) 체제 등 글로벌 현안에서 미국과 맞서면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타임이 그에게 붙인 호칭이 ‘새로운 러시아의 차르’였다. 시민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는 무관심한, 위험한 인물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제정러시아의 황제를 칭하는 차르는 독재자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타임의 차르 호칭은 정확했다. 이후 푸틴에게는 ‘현대판 차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푸틴은 종종 차르의 표상이라고 할 표트르 대제(1672~1725)나 이반 4세(이반 뇌제·1530~1584)에 비견된다. 실제 표트르 대제는 푸틴의 우상이다. 그의 집무실에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는 부국강병과 팽창정책으로 러시아가 19세기에 영국과 함께 세계 최강대국 반열에 오르게 하는 기틀을 닦았다. 2014년 푸틴의 크림반도 병합은 표트르 대제의 팽창정책을 따른 대표적인 사례다. 초대 차르 이반 4세는 서방에서 폭군으로 불린다. 하지만 스탈린은 그를 ‘위대하고 현명한 통치자’로 추앙했다. 푸틴의 등장으로 그는 재조명됐다. 2016년 10월 그의 동상이 처음으로 세워졌다. 동상 제막식에서는 “우리에게는 이반 4세처럼 세계가 러시아를 존중하도록 만든 위대하고 강력한 대통령이 있다”는 푸틴 찬양이 울려 퍼졌다.
푸틴이 명실상부한 ‘현대판 차르’의 길을 열었다. 지난 1일 치러진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약 78%의 찬성률로 가결됐다. 개정 헌법은 ‘동일 인물의 두 차례 넘는 대통령직 수행 금지’ 조항에 푸틴의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특별조항을 넣었다. 이에 따라 2024년 임기가 끝나는 푸틴은 다시 대통령 출마가 가능하다. 개헌 투표 전 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어 계획대로 된다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역임할 수 있다. 총리 재임 4년을 제외하고도 32년 동안 크렘린의 주인이 되는 셈이다. 이 문명의 시대에 현대판 차르라니. 러시아는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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