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이라는 통신수단과 투표라는 참정권 행사가 결합한 우편투표는 1918년 영국에서 본격 도입됐다. 1차 세계대전 중 전선에 있는 병사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한 부재자투표의 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편투표는 사전투표 제도로 발전하면서 지금은 보편적인 투표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나라마다 새로운 투표방법을 고안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우편투표는 이미 대세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 난데없이 우편투표를 이유로 ‘대선 연기론’을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엄청난 반대 여론에 놀라 9시간 만에 대선연기론은 철회했지만 우편투표를 거론한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썼다. 그는 “선거를 원하지만 모든 투표용지가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석 달이나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부정선거’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에도 외국이 선거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며 우편투표에 반대했다. 하지만 우편투표 부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편투표 부정률은 0.00004~0.0009%다. 1000만건 중 4~90건이라는 말이다. 이미 오리건·워싱턴·유타·콜로라도·하와이주는 전면 우편투표를 아무 탈없이 실시 중이다.
우편투표가 중복 투표를 유발하거나 투표용지의 지연 도착·분실로 무효표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NBC뉴스·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58%가 우편투표에 찬성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우편투표를 권장했다. 최소 17개주가 우편 투표 실시를 위한 법적 근거를 이미 마련했다. 트럼프도 과거 우편투표를 한 사실이 있다. 지난 3월 플로리다주 공화당 예비선거와 2018년 중간선거 때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속셈이 다른 곳에 있다고 본다. 트럼프가 코로나19 구제법안에 우편투표 예산 수십억달러를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 우편투표 부정 논란을 부추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소수인종과 젊은층의 투표 참여를 막고, 향후 대선 패배 시 불복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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