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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여적

[여적] "앙코르 마크롱"(220426) 선출직 경력 전무, 현역 의원 없는 정당 창당. 정치 신인인 그가 내세울 것은 변변찮았지만 성과는 눈부셨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기세로 결선투표에서 압승을 거둬 39세에 국가 정상에 올랐다. 그의 신생 정당은 ‘공화·사회’ 양당 정치의 틀을 깨고 1당이 됐다. 당선 후 행보도 거침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 배틀’을 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르사유궁전으로 불러들여 위세를 과시했다. 비록 ‘독재자’ ‘태양왕’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얻었지만, 5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와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판치던 세계 정치판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다. 마크롱이 24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다시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프랑스 .. 더보기
[여적] 불량국가(rogue state)(220409) 미국은 적대국을 향해 여러 개의 용어로 지칭했다. 냉전 말기인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불렀다. 2년여 뒤 레이건은 테러지원국이라는 의미로 ‘무법국가(outlaw states)’라는 말을 썼다. 미 국무부가 지정한 테러지원국과 일치하진 않았는데, 그가 지목한 것은 이란·리비아·북한·쿠바·니카라과 5개국이었다. 2001년 9·11테러를 겪은 후 조지 W 부시는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exis of evil)’이라고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을 ‘불량배(rogue actor)’라고 칭했다. ‘불량국가(rogue state)’도 빼놓을 수 없다. 자국민에 대한 인권 유린과 테러 지원, 대량살상무기 추.. 더보기
[여적] 마리우폴 봉쇄(220408)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1941년 6월22일 소련을 침공한다. 그해 9월 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격한 독일군은 도시를 점령하는 대신 봉쇄를 선택한다. 악명 높은 ‘레닌그라드 봉쇄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주민들을 굶겨서 항복시키는 전술로, 1944년 1월27일까지 872일 동안 전체 주민의 3분의 1인 100만명이 희생됐다. 기아뿐 아니라 독일군의 계속된 공습과 포격, 괴혈병, 혹독한 추위 등이 주민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은 동물은 물론 의약품과 아교풀, 가죽 등을 먹어가며 연명했다. 심지어 인육을 먹는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강요함으로써 군사적 봉쇄작전의 잔혹함을 보여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현대판 레닌그라드’로 만들고 있다. 지난달 초.. 더보기
[여적] 젠더 X(220402)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기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신체적으로 남녀 정의에 해당하지 않는 간성(intersex), 성 정체성 면에서 남녀 구분에서 벗어난 논바이너리(non-binary)가 그들이다. 이들은 ‘제3의 성’으로 불린다. 비서구권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인정돼왔지만 서구의 경우 1960년대 이후 생물학적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달리, 후천적인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 개념이 도입되면서 주목받았다. 여권의 성별란(sex)에는 남성(male)은 M, 여성(female)은 F로 표기된다. 성평등이나 젠더평등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된 지 오래지만 변하지 않는 풍속도다. 2003년 한 호주인의 여권 성별란에 M과 F가 아닌 X 표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제3의 성인 젠더 X의 존재를 인정한 .. 더보기
[여적] 바그너그룹(220330) 전장을 누비는 것은 정규군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국제의용군이 모여들고 있다. 정부 요인과 시설을 보호할 목적으로 합법적으로 계약한 군사그룹도 있다. 이른바 민간군사기업(PMC) 직원으로 불리는 용병이다. 민간인 신분이지만 정부를 대신해 전투도 수행한다. 특수부대(네이비실) 출신의 에릭 프린스가 1996년 설립한 미국의 블랙워터가 대표적이다. 블랙워터(현 아카데미)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등 연방정부와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급성장했다. 2007년 수도 바그다드에서 민간인 17명을 총격 살해하는 등 악명도 얻고 있다. 미국에 블랙워터가 있다면 러시아에는 바그너그룹이 있다. 러시아 군정보기관.. 더보기
[여적] 굿바이 올브라이트(220325)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유리천장을 깬 대표적 인물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 2기(1997~2001) 국무장관을 지낸 그는 여성으로 처음 그 자리에 올랐다. 초대 토머스 제퍼슨부터 현직 앤서니 블링컨까지 역대 71명 국무장관 중 여성은 3명이다. 상원 인준 표결에서 찬성 99, 반대 0으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올브라이트 덕분에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도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올브라이트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핀(브로치) 외교’다. 유엔대사(1993~1997)와 국무장관 시절 그는 핀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크렘린궁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 그는 귀·눈·입을 막은 원숭이 핀을 달고 나왔다. 이유를 묻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당신의 체첸 정책 때문”이라고 하.. 더보기
[여적] 대통령의 명절 선물(220124) 역대 대통령의 명절 선물에는 저마다 특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성격과 국정철학, 시대상황 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로 인삼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멸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을 주로 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10번의 명절 선물 중 9번을 각 지역의 전통주로 선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역 특산물을 선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통주와 각 지역 특산물 위주로 보낸다. 대통령의 선물은 내용 못지않게 받는 사람을 고려한다. 이명박 청와대는 2008년 추석 선물을 황태, 대추, 재래김, 멸치 등 전국 특산물로 계획했다. 그런데 불교계 선물만은 다기세트로 교체했다. 불교가 살생을 금하는 것을 배려했다. 당대표 시절부터 육포를 명절 선물로 즐겨 .. 더보기
[여적] ‘경(京)’원의 시대(220115) 머릿속에서나 존재할 뿐 일상생활 속에서 결코 볼 수 없을 것 같은 거액이 있다. 1경(京)원이 그렇다. 1조원보다 1만배나 큰 액수다. 0의 개수만 16개나 된다. 1조원이야 세계적인 부자의 기준(억만장자)이니 알 수 있지만 1경원은 도무지 와닿지 않는다. 월급쟁이가 평생 일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이 많아야 수십억원이니 당연하다. 시야를 넓혀도 마찬가지다. 올해 예산 608조원, 지난해 가계부채 1806조원, 지난해 국내총생산(GDP·국제통화기금 기준) 1조8239억달러(약 2163조8750억원)도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국내 통계로는 2020년 말 기준 1경7700조원인 국민순자산에서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접해본 가장 큰 액수는 535조달러(약 63경4670조원)다. 2017년 기.. 더보기
[여적] 투투 대주교의 진실화해위(211228)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 메시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의 정신을 빌려온 것이다. ‘가해자의 진실 고백-용서-화해’ 과정은 남아공 진실화해위가 추진한 ‘보복 없는 과거사 청산’의 전형이다. 40년이 지나도록 규명되지 않는 5·18 발포 명령자와 계엄군이 자행한 숨겨진 민간인 학살 등을 찾기 위해서는 처벌 그 자체보다 고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1994년 오랜 투옥과 투쟁 끝에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청산과 사회통합을 위한 첫 작업으로 진실화해위를 만든다. 이 위원회는 과거사 청산의 새로운 모델.. 더보기
[여적] 핑크 타이드(211222) 중남미는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린다. 200년 전인 1823년 12월 제임스 먼로 미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이 그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로부터 미주 대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냉전 시절 좌파 정부가 잇따라 등장하자 미국은 그때마다 쿠데타로 정권교체에 나섰다. 한 분석에 따르면 1945년 이후 미국이 시도한 정권교체 횟수는 68번이나 된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을 등에 업은 독재자를 경험했다고 한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 주도의 신자유주의 입김이 중남미를 지배했다. 중남미 정치 지형이 바뀌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말이다. 1999년 베네수엘라, 2003년 브라질, 2006년 볼리비아에 좌파 정부가 잇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