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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편집실에서66]170년이나 기다리라고?(2016.11.22ㅣ주간경향 1202호) 지난달 26일 세계경제포럼(WEF)은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현 추세라면 남녀 간 임금격차가 같아질 때까지 170년이 걸린다는 전망이었다. 지난해 전망보다 52년이나 더 늦춰진 것이다. 맙소사, 2186년이 돼야 남녀 임금이 같아진다고? 장탄식이 절로 나왔다. ‘170년이나 기다릴 수 없다’는 프랑스 여성 직장인들이 지난 7일 오후 4시34분을 기해 직장을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조기퇴근’ 시위였다. 연말까지 매일 이 시간에 퇴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근데, 왜 ‘오후 4시34분’이었을까. 현재 프랑스 여성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남성이 이 시간까지 일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임금을 약 15%를 덜 받는다. 남녀 소득불평등에 항의하는 시위는 아이슬란드에서 시작됐다. 1.. 더보기
[편집실에서65]“퇴진”은 국민의 명령(2016.11.15ㅣ주간경향 1201호) 박근혜 대통령이 마침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헌정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이 자체만으로도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박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관련 뉴스가 쏟아지지만 바뀌지 않는 사실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커져가는 국민들의 ‘박근혜 퇴진’ 목소리다. 다른 하나는 떨어지는 지지율이다. 4일 발표된 갤럽의 지지도는 5%로 역대 최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록(6%)마저 깼다. 바닥이 어디일지 알 수가 없다. 떨어지는 것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요, 치솟는 것은 국민의 분노다. 박 대통령 신세는 바람 앞의 나뭇잎이다. 나라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잔불이다. 민심도 시간도 박 대통령 편이.. 더보기
[편집실에서64]비정상 정치의 굿판을 걷어치우자(2016.11.08ㅣ주간경향 1200호)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로 만신창이가 됐다. 박 대통령이 한 말로 표현하자면 ‘혼이 비정상’인 대통령이자 ‘참 나쁜 대통령’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은 물론 그가 이끄는 정부는 ‘식물정부’가 됐다. 정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그를 지지하지 않은 이들이나 지지한 51.6%나 황당하기는 매한가지다. 선무당의 말에 놀아난 대통령을 보니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잠 못 이루는 국민들의 입에서는 ‘탄핵’과 ‘하야’라는 말이 애완견 부르듯 튀어나온다. 분노의 수위는 임계점을 넘었다. 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하다. 국태민안이다. 대통령이 천재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머리’와 ‘손’과 ‘발’을 빌려 썼다. 전두환과 김영삼은 노골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자.. 더보기
[편집실에서63]환관 조고와 ‘비선실세’ 최순실(2016.11.01ㅣ주간경향 1199호) BC 210년,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순행지에서 갑자기 죽는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환관 조고는 꾀를 부린다. 진시황의 유지를 숨긴 채 태자 부소 대신 후궁 소생의 어린 호해를 후계자로 세운다. 승상이 된 조고는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어한다. 모반을 앞둔 그는 신하들을 시험한다. 그는 사슴을 끌고 와 호해 앞에 바치며 말한다. “말입니다.” 호해는 웃으며 말한다. “승상이 틀리지 않았소? 사슴을 말이라 하니 말이오.” 호해가 신하들에게 묻는다. 대답은 갈린다. 목숨을 걸고 직언한 신하들은 죽임을 당했다. 사마천의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자성어의 유래다. 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더보기
[편집실에서62]밥 딜런과 블랙리스트(2016.10.25ㅣ주간경향 1198호)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반가워 ‘블로잉 인 더 윈드’와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모처럼 들었다.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수상은 문화예술계 인사 블랙리스트로 시끄러운 우리에게 보낸 경종이 아닐까.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의 목소리와 음미하게 하는 가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예나 지금이나 울림이 크다. 중장년층이라면 밥 딜런 노래의 힘을 안다. 블랙리스트 파문이 한창이던 때 날아온 밥 딜런의 수상 소식은 현 정부에는 청천벽력일지 모르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 아닐까 싶다. 블랙리스트라는 말 속에는 음침함과 조작, 비겁함과 겁박, 반자유와 반풍자 등이 섞여 있다. 역사적으로 블랙리스트의 부정적 측면을 보여준 대표 사례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다. 1940.. 더보기
[편집실에서61]‘옥토버 서프라이즈’를 기다리며(2016.10.18ㅣ주간경향 1197호)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없었다’. 최근 외신을 보다 이런 제목에 눈길이 갔다.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 뒤져봤다. 이런 내용이었다. 지난 4일 새벽(미국 동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시선은 독일 베를린에 쏠렸다. 비리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줄리안 어산지가 중대발표를 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특히 트럼프 지지자와 매체 쪽에서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한 방이 될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일부 친트럼프·반클린턴 매체 쪽에서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만든 말이었다. 클린턴과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는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새벽까지 졸리는 눈을 비비며 지켜봤다. 그러나 기대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더보기
[편집실에서60]물대포에 어린 파시스트 국가 그림자(2016.10.11ㅣ주간경향 1196호) 지난해 4월 말~5월 초 일어난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폭동을 떠올릴 때면 늘 두 장면이 생각난다. 주지하다시피 볼티모어 폭동은 경찰에 체포돼 구금 중이던 프레디 그레이라는 흑인 청년의 의문사가 원인이었다. 그레이는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척추를 다쳐 치료를 받다가 일주일 만에 숨졌다. 그의 체포 과정과 부상 경위 등이 공개되지 않자 그동안 자신들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불만을 품어온 흑인들이 그레이의 장례식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첫 장면은 군사작전하는 군대를 방불케 하는 시위진압 경찰이다. 당국은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주 방위군과 경찰 특수기동대(SWAT)는 물론 각종 첨단장비들을 동원했다. 감시용 드론(무인비행기), 자동소총을 탑재한 경장갑차, 산탄총과 연막탄, 최루탄 발사기, 적.. 더보기
[편집실에서59]‘악마의 증명’ 강요 사회(2016.10.04ㅣ주간경향 1195호) ‘악마의 증명’이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사실이나 인과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20세기 중반 미국을 뒤흔든 ‘매카시즘’ 광풍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1950년 2월 초, “국무부 안에 공산주의자가 205명이 있으며, 지금도 근무하면서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상원은 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매카시가 감춰진 엄청난 진실을 발견한 것처럼 떠벌린 게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정부 당국자가 ‘정부 부처에 공산주의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매카시의 주장을 조사위가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정상적이라면 상원은 매카시.. 더보기
[편집실에서58]이강희와 산드라(2016.09.27ㅣ주간경향 1194호) 우민호 감독의 영화 을 최근에야 봤다. 지난해 개봉 때는 물론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사태 때도 보지 않았던 영화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런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된 계기는 최근 물의를 빚은 송희영 전 주필 사건이 아닌가 싶다. 영화 내용은 얼추 알고 있었지만 송 전 주필 사건이 터지면서 도저히 보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 충동을 느꼈다.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교도소에 수감된 조국일보 이강희 논설주간(백윤식 분)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개·돼지’ 발언이나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드립도 ‘오징어 안줏거리’와 ‘국민의 냄비 근성’ 발언 앞에서는 초라할 정도였다. “오징어 씹어보셨죠?… 이빨 아프게 누가 그걸 끝까지.. 더보기
[편집실에서57]야코브, ‘정상’에 대해 묻다(2016.09.13ㅣ주간경향 1193호)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야코브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처음 만나면 본능적으로 충동을 느껴요. 빨리 도망쳐버릴까, 아니면 죽여버릴까. 그런데 오늘 저녁은 참 평화롭군요.” 텅 빈 덴마크 왕립극장 무대 위. 한 청년이 이렇게 외친다. 목소리는 명료하지 않다. 그의 외침은 무엇을 의미할까. 궁금증은 곧 풀린다. 이 외침은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텅 빈 객석을 향해서가 아니다. 극장을 가득 메우고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관객들 앞에서다. 막은 내려지고 감동의 여운은 진하게 남는다.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6)에서 대상을 받은 를 본 것은 행운이었다. 이 다큐는 한국인 입양아, 뇌성마비 장애인, 삶을 연극으로 반추한 점 등 극적 요소를 모두 갖췄다. 야코브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