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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편집실에서56]‘가습기 살균제 참사 달력’을 만들며(2016.09.06ㅣ주간경향 1192호) 자료에는 피해자 성명과 생년월, 사망연월, 성별, 사용제품 등 5가지 정보가 들어 있었다. 비록 개인 정보보호를 위해 이름과 생일, 사망 날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사망할 당시 나이를 파악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생후 1개월도 안 된 영아에서부터 산모로 짐작되는 여성들, 그리고 9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참사에는 남녀노소 예외가 없었다. 처음 이 명단을 접하고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직도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채 어두운 바닷속에 갇혀 있는 세월호 희생자 9명이 겹쳐져서만은 아니다. 그 이름들은 나와 무관했지만 결코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 이웃이었다. 어쩌면 내 아이 대신 고통 속에 숨졌을지도 모른다. 은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인.. 더보기
[편집실에서55]에어컨 전기요금 폭탄의 ‘폭탄해법’(2016.08.23ㅣ주간경향 1190호) 7월 마지막 주말, 어머님 생신을 맞아 지방 소도시에 사시는 부모님 댁을 찾았다. 뜨거운 오후 햇볕을 가르고 차를 몰아 어스름할 무렵에 도착했다. 현관 앞에 서니 ‘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어컨 소리였다. 문을 열자 안에서 미리 온 동생들이 한마디한다. “빨리 들어와. 냉기 식겠다.” 너댓 평 되는 거실은 작은 벽걸이 에어컨 덕에 선선해 살맛이 났다. 언제 설치해 드렸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도 10년은 됐지 싶다. 그동안 몇 번이나 가동하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처음 틀었다.” 그럼 그렇지. 해마다 이맘때 드는 어머님 생신을 맞은 자식과 손주들의 연례행사나 손님 방문 때 외에는 일절 가동하지 않으실 테니. 앞으로 자주 트시라고 했지만 그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안다... 더보기
[편집실에서54]대통령 딸의 식당 알바(2016.08.16ㅣ주간경향 1189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둘째 딸 사샤(15)가 휴양지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는 뉴스를 보고 놀랐다. 충격은 아니었지만 신선했고, 부러웠고, 착잡했다. 보도를 보면 사샤는 가족이 해마다 여름휴가를 보내는 휴양지의 한 식당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부터 하루 4시간가량 초보 알바 일을 했다. 손님 맞기, 서빙, 그릇 치우기 등이다. 식당 주인은 오바마 부부와 친구다. 오바마 가족이 6일부터 이곳에서 2주간 여름휴가를 보내니 알바 기간은 길어야 닷새다. 사샤의 알바 소식은 미국에서도 화제다. 뉴스 사이트마다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다. 고작 며칠이냐는 실망감을 표시하거나, 하는 김에 일주일은 더 하라는 글도 있다. 아버지 ‘빽’ 덕분이라고 비꼬거나 세상 일이 다 그런 것 아니냐는 글도 있다. 고작 4시간 알바를 .. 더보기
[편집실에서53]염치없는 호모에렉투스는 되지 말자(2016.08.09ㅣ주간경향 1188호) 두 장면을 떠올려보자. 첫 번째, “타이어를 껴입고 배를 깔고 바닥을 기며 구걸하는 걸인이 비가 오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걸어”가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굽신대며 표를 구걸하고, 신분을 위장한 채 머슴입네 간을 빼줄 듯이 가난한 자의 발바닥이 되겠다던 정치인들”이 “숙였던 고개와 바닥에 깔았던 신분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거만한 지배자가 되는” 장면이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두 장면은 시인 백무산의 시 ‘호모에렉투스’에 나온다. 시인은 걸인과 정치인을 “생존을 위해 직립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인은 걸인과 정치인 행태에서 배신감이나 혐오를 떠올린다. 그러나 걸인의 동냥 쇼와 정치인의 계급위장 쇼는 다르다고 본다. 시인의 대담한 시구 안에 답이 있다. “배를 깔고 바닥.. 더보기
[편집실에서52]공화국의 위기(2016.08.02ㅣ주간경향 1187호) “국가를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비조치이며 민주주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해서다.” 참으로 익숙한 화법이다. 두 사람의 말이지만 한 사람의 말로 착각할 만큼 닮아 있다. 전자는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유로 내세운 말이다. 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사드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한 말이다. 언론들은 에르도안의 비상사태 선포를 ‘역(逆)쿠데타’라고 부른다. 반대파 제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쿠데타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의 언급에는 ‘국민에게 싸움걸기’라는 조롱이 붙는다. 터키 국민은 한국을 ‘칸가르데쉬 코리아’, 즉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러모로 닮은 한국과 터키가 위기에 .. 더보기
[편집실에서51]오웰이 지금 한국에 산다면(2016.07.26ㅣ주간경향 1186호) 존스의 매너 농장에는 메이저라는 늙은 수퇘지가 있다. 메이저는 농장의 동물들에게 인간의 착취와 학대에 대해 반란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메이저의 가르침은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에게 전해진다. 그들은 다른 동물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농장을 장악한다. 농장 이름도 ‘동물농장’으로 바꾼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다른 동물들에게 ‘7계명’ ‘동물주의’를 가르치며 세력을 키워간다. 농장을 빼앗긴 존스는 이웃의 도움으로 농장을 되찾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스노볼과 나폴레옹 간 권력 다툼이 심해지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이 교육시킨 아홉 마리 개를 동원해 스노볼을 내쫓는다. 그 뒤 돼지들이 중심이 된 회의체를 만들어 권력을 장악한다. 시간이 갈수록 돼지들은 서서 걷고 채찍을 들고 옷을 입는 등 .. 더보기
[편집실에서50]“같이 삽시다”(2016.07.19ㅣ주간경향 1185호)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장. 정의당의 노회찬 원내대표는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섰다. 그는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근로자 평균임금의 3배, 최저임금의 5배 가까운 액수입니다.” 그리고 가슴팍에 꽂히는 말이 나왔다. “같이 삽시다. 그리고 같이 잘삽시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평균임금이 오르고 최저임금이 오른 후에 국회의원의 세비를 올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국회가 먼저 나서서 고통을 분담하고 상생하는 모범을 만듭시다.” 그리고 7~8초의 침묵 뒤 ‘언어의 마술사’다운 한마디. “아무도 박수 안 치시네요.” 이 말을 한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회의장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같은 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한상균 .. 더보기
[편집실에서49]EBS에 뻗친 검은 손(2016.07.12ㅣ주간경향 1184호) “교육부가 EBS를 관리해야 한다.” “EBS는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왜곡한 점이 많다.” EBS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게다. 전자는 새누리당 4선 한선교 의원의 말이다. 후자는 보수단체 자유경제원이 EBS에 항의하기 위해 보낸 공문 내용이다. 공통점은 EBS의 특정 프로그램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살펴보자. 우선 한 의원의 말이다. 그의 말은 6월 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왔다. 그는 이준식 부총리에게 “EBS가 아이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면서 위의 말을 했다. 이 부총리는 “EBS는 독립적 기관이기 때문에 관리한다는 말씀을 드리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한 의원은 “그게 문제”라며 “지금 말씀처럼 헐렁헐렁하.. 더보기
[편집실에서48]그릇된 ‘미생지신’에 갇힌 대통령(2016.07.05ㅣ주간경향 1183호)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 아니겠느냐.” 2010년 1월 중순,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한창일 때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 간 논쟁이 벌어졌다. 정 대표가 불을 질렀다. 정 대표는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 전 대표를 미생(尾生)에 비유했다. 미생은 고사성어에 나오는 인물이다. 애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오는데도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 익사해 흔히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하는 사람을 빗댈 때 원용된다. 발끈한 박 전 대표는 나흘 뒤 반격했다. “이해가 안 된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지만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미생은.. 더보기
[편집실에서47]샌더스 정신의 실천자들, ‘버니크래츠’(2016.06.28ㅣ주간경향 1182호)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도 끝나면 그 여운이 서서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14일 끝난 11월 미국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당 경선 드라마도 그럴 것이다.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다윗(버니 샌더스)이 골리앗(힐러리 클린턴)을 이기는 반전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물론 반전은 없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여운이 짙다. 주연보다 조연이 빛난 드라마였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쉬움이 커서일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샌더스의 역할은 흥행을 돕는 분위기 메이커에서 끝나는 걸까. 미국과 전 세계를 들썩였던 샌더스 돌풍도 경선 종료와 함께 사라질까. 민주당은 샌더스 효과를 어떻게 계승해 대선 승리를 이끌 것인가. 샌더스 지지자들은 그의 유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