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가 쓴 칼럼 썸네일형 리스트형 [편집실에서76]채널 9번만 보는 ‘혼족’들(2017.02.07ㅣ주간경향 1212호) 최근 방영된 을 보다 몇 차례 빵 터졌다. 이번 미션은 ‘국민MC’ 유재석이 자신을 모르는 사람을 찾는 거였다. 유재석은 ‘1일 게스트’ 김종민과 함께 강원도 정선군의 오지마을을 찾는다. 노인들만 사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을회관에서 KBS 1TV 교양프로만 보는 91세 할머니가 모를 것이라는 결정적 제보를 듣는다. 유재석은 할머니와의 첫 대면에서 미션에는 성공하지만 ‘굴욕’을 당한다. “혹시 저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모르겠는데….” 하루 종일 TV를 보고 모든 프로그램을 다 좋아한다면서도 자신을 모른다는 말에 충격 받은 유재석은 TV 케이블채널을 돌린다. 설상가상. 그날따라 자신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없다. 그때 할머니로부터 나온 말에 빵 터졌다. “TV에 본래 안 나오는구먼, 뭘.” 이 다음이 .. 더보기 [편집실에서75]권력자 식의 말하기 시대는 끝났다(2017.01.24ㅣ주간경향 1211호) 말은 권력이었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용어가 있다. 이세고리아와 파레시아다. 이세고리아는 평등한 말하기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꼽은 것이 바로 이세고리아다. 참주제, 독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파레시아는 자유롭게 말하기 또는 진실 말하기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진실, 자유, 비판을 파레시아의 3요소로 꼽았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죽음까지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말하기 역사는 정치권력이 신에서 영웅(왕)으로, 영웅에서 다시 시민으로 바뀐 것과 같은 궤적을 보인다. 물론 시민은 오늘날의 시민이 아니다. 아테네에서 태어난 남성으로, 여성과 외국인, 노예는 포함되지 않는.. 더보기 [편집실에서74]노란 종이비행기(2017.01.17ㅣ주간경향 1210호) 책꽂이 한쪽 구석에 노란 종이비행기가 놓여 있다. 겉에는 ‘잊지 않기 위해’라고 쓰여 있다. 종이비행기는 왜 거기 있을까. 종이비행기를 펼쳐본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2년 전 약속 오늘 다시 되새겨봅니다. 그리고 그 약속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2주기인 오늘 다짐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하겠습니다. 별이 된 모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날의 추억이 회한으로 되살아난다.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뒤늦게 달려갔던 팽목항. 거기에서 아이들에게 보내려고 버스 안에서 꾹 눌러 쓴 편지. 세찬 비바람 탓에 날리지 못하고 품속에 간직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종이비행기. 날릴 수만 있었다면 중력, 추력, 항력, 양력의 원리를 넘어 무한비행으로 천국으로 보낼.. 더보기 [편집실에서73]임금 착취 굴레의 갇힌 삶(2017.01.10ㅣ주간경향 1209호) 확실하지는 않지만 1988~89년 무렵 병장 월급은 1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맙게도 내가 복무하던 부대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자대 배치 이후 전역 때까지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줬다. 특수부대여서 위험수당이 월급만큼 더해졌다. 27개월 뒤 1989년 봄 제대할 때 30만원가량의 목돈이 든 통장을 받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28년이 지난 2017년 병장 월급은 스무 배 이상 오른 21만6000원이란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어떤 이는 ‘20만원 고지 돌파’에 의미를 두지만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여전히 쥐꼬리 수준이다. 2017년 최저임금은 월급 기준으로 135만2230원이다. 병장 월급은 최저임금의 약 16% 수준에 불과하다. 새삼스럽게 병장 월급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호 표지이야기 때문이다.. 더보기 [편집실에서72]‘최종 소비자’형 대선후보 원하나(2017.01.03ㅣ주간경향 1208호) 몇 달 전, 졸업논문이 리포트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 글을 읽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대학교수인 우치다 다쓰루(內田樹)가 해마다 졸업논문을 지도할 때 대학생들에게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반지성주의자들의 초상’(, 이마, 2016)에 실린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논문과 리포트의 차이는 우선 읽을 대상에 있다. 리포트는 교수만 본다. 따라서 거짓을 쓰든, 읽지 않은 책을 읽은 것처럼 쓰든, 인터넷에서 글을 복사해 붙이든, 담당교수만 알아채지 못하면 된다. 반면 논문은 담당교수만 보는 게 아니다. 만인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데이터가 잘못되거나, 인용 문헌의 제목이 틀리거나,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서술하면, 만에 하나 담당교수가 그냥 넘어갔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지적할 가능성이 .. 더보기 [편집실에서71]파사현정(破邪顯正) (2016.12.27ㅣ주간경향 1207호)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 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신의 내부에서 무너져가는 괴로움의 고백이다. 절대적인 것,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믿고 있던 그 많은 우상의 알맹이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는 그 잠을 깨는 괴로움을 주는 것을 사과해야겠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2016년 세밑. 책꽂이에서 고 리영희 선생(1929~2010)의 을 꺼내 펼쳐본다. 1980년에 나온 증.. 더보기 [편집실에서70]병신역적(丙申逆賊) (2016.12.20ㅣ주간경향 1206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사필귀정이다. 제정신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당연한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56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최경환 의원은 참석하고도 표결하지 않았다. 이 56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을 ‘병신역적(丙申逆賊)’이라 부르는 것은 지나친 처사일까. 111년 전 대한제국이 주권을 빼앗긴 을사늑약 강제 체결 때 찬성한 5인의 매국노에게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역사에 남겨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비선실세 최순실과 함께 국사를 말아먹은 박 대통령을 옹호한 새누리당 의원들은 을사오적 취급 받는 게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국회의원인가”라는 원성이 들리지 않는가. 병신역적의 수장은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다. 이들을 비롯해 56명의 새누리당 .. 더보기 [편집실에서69]촛불 앞의 ‘11·29 반동’(2016.12.13ㅣ주간경향 1205호) ‘신의 한 수’라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내심 ‘두고 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법도 하다. 이런 속내를 감추기 어려웠던가 보다.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야당에 약 올리는 허튼소리가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시쳇말로 약이 좀 오를 수 있다.” “손에 장을 지지겠다.” 그럼 어때. 어쨌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긴 거대한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전략임에는 틀림없으니까. 역풍이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지. 중요한 건 탄핵 대오를 뒤흔들고 시간을 버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니까. 또 바람이 불면 언젠가 촛불이 꺼질지 누가 알랴. ‘단계적 퇴진’을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와 이틀 뒤 나온 ‘4월 퇴진·6월 대선’이라는 새누리당의 퇴진 로드맵 이후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서 든 생각이.. 더보기 [편집실에서68]아직 촛불을 내려놓을 때가 아니다(2016.12.06ㅣ주간경향 1204호) 다섯 번째 거대한 촛불이 광화문광장에서 타오르기 하루 전인 11월 25일 이른 아침 출근길.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잠시 멈춰서서 광화문광장 쪽을 바라본다. 어둠 속에서 광장은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너머 북악 아래 구중궁궐 청와대는 암흑천지처럼 어둠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날마다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을 내딛는 광화문광장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 지 다섯 번째. 그곳에서 벌써 분노한 민중의 거대한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내일은 어떤 축제판이 펼쳐질까. 늘 그랬듯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연대의 힘으로 대동세상을 만들 꿈을 담금질하겠지. 이런 상념에 빠진 채 광화문광장을 뒤로하고 회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뒤에서 뭔가가 목덜미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도대체 뭘까. 그것은 한 달 동안 .. 더보기 [편집실에서67]‘머리 둘 달린 인간’을 제거하는 방법(2016.11.29ㅣ주간경향 1203호)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을 조종하는 의 풍자 만평을 봤을 때 ‘머리 둘 달린 개’ 이야기가 떠올랐다. 1959년, 옛 소련 의사 블라디미르 데미호프는 작은 개 머리 부분을 잘라 큰 개 어깨에 접붙여 ‘괴물’을 만들었다. 작은 개는 큰 개의 심장에 의존해 살지만 괴물은 오래 살지 못했다. 나흘 만에 죽은 괴물은 박제가 돼 독일 박물관에 기증됐다. 데미호프는 장기이식 수술의 선구자였다. 머리 둘 달린 개 실험은 그 일환이었을 터이다. 실험 사진은 당시 지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실험 윤리 논란을 일으켰다. 데미호프는 인류의 장기이식 수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대표적인 ‘배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비판 받는다. 에서 이를 소개한 홍성욱 서울대 교수는 데미호프의 실험이 결국 ‘머리 둘 달린 인간’으로 귀결되.. 더보기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