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가 쓴 칼럼 썸네일형 리스트형 [편집실에서46]싸우지 않고도 여성들이 이기는 방법(2016.06.21ㅣ주간경향 1181호) 이번호 마감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 퇴근 버스에서 후배 여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멎는 듯했다. “깜깜하고 까마득한 기분… 살아있다는 생동이 아닌 살아남았다는 생존,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은 다른 세계의 감각이었다. …지난 몇 주간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이름 지을 수 있는 감각들이 무기력했고 슬펐고 무서웠다.” 공감의 표시로 ‘좋아요’를 어느 때보다도 꾹 눌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날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악몽 속에 사는 동안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은 계속 일어나도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니. 그 직전에 또 다른 후배 여기자가 글을 올렸을 때도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 여교사였다면 이렇게 할 수 .. 더보기 [편집실에서45]스크린도어 안팎과 그 사이 어디에도 없는 자들(2016.06.14ㅣ주간경향 1180호) 지하철역에 처음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을 때 ‘그 기준이 뭘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 내 사고를 계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으니 안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용객이 많은 역이 0순위였을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불온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었다. 혹시 지역 차별은 없을까. 힘 없는 동네 역이 힘 센 동네 역에 밀리는 상황 말이다. 스크린도어에 붙은 광고판을 보면 돈 거래가 설치 순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을 더 더듬어 보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에는 ‘안전선’이라는 게 있었다. 선로에서 조금 떨어진 플랫폼에 그어진 노란색 선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안전선 안과 밖이 헷갈린 것이다. 열차가 도착할 때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4]‘팔할’의 도(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 왜 ‘팔할’이었을까. 학창 시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자화상’ 시구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를 읽고 든 의문이었다. 칠할도 구할도 아닌 팔할. 성찰의 근거가 뭔지는 모르지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당 식으로 풀면 노력이 구할구푼이다.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18세기 문인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소개한 (2015, 북드라망)이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스스로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이덕무의 방이 작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방을 넓히라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3]한강이 온다 한들(2016.05.31ㅣ주간경향 1178호)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을 찾았다. 그의 책 세 권을 샀다. . 평소 유행 대열에 끼는 걸 꺼리는 나로서는 일탈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마도 호기심에 따른 충동이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두어 달 전 그가 이 상 후보 13명에 뽑히고 한 달 전 최종후보 6명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비록 관심은 갔지만 책을 사야겠다는 간절함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와 를 내리 읽었다. 완전히 한강에 빠져버렸다. 그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행동했을 법하다. 축하할 일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 더보기 [편집실에서42]빼앗긴 봄을 되찾자(2016.05.24ㅣ주간경향 1177호) 올해 봄부터 외출할 때 생긴 습관이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이다. 미세먼지 상태가 ‘나쁨’이면 일단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창문도 열지 않는다. 출퇴근할 때는 마스크를 쓴다. 가방에는 비상용 마스크(KF80)가 준비돼 있다. 미세먼지 탓에 겪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좋은 봄날을 완상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크다. 몇 주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고교생 딸과 봄나들이 갈 요량으로 토요일에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예약까지 마치고 마감에 열중하던 금요일 밤, 아내가 전화를 했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수준이라서란다. 딸과의 여행에 한껏 들떠 있었지만 딸아이의 건강과 맞바꿀 수는 없어 결국은 포기했다. 딸은 만성 아토피에.. 더보기 [편집실에서41]아름다운 퇴진의 조건(2016.05.17ㅣ주간경향 1176호) ‘트럼프의 승리는 미국의 비극’. 영국 주간지 최신호 제목이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면 공화당은 물론 미국인에게 재앙이 될 거라는 우려의 표현이다. 이달 초 트럼프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그에 대한 불안감이 곳곳에서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민주당으로서는 조급해진 것 같다. 민주당도 이 기회에 힐러리 클린턴으로 후보를 확정해 ‘클린턴 대 트럼프’ 대결구도를 만들어 대선에서 승리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양자 대결 시 클린턴이 승리할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려면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버니 샌더스다. 클린턴 측과 민주당의 바람대로라면 공은 샌더스 손에 있는 셈이다. 클린턴과는 결이 다른 진보 의제로.. 더보기 [편집실에서40]사라진 28쪽, 사라진 7시간(2016.05.10ㅣ주간경향 1175호) 15년이 지났지만 9·11 테러를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들은 많다. 대표적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9·11은 알려진 테러리스트 19명만의 독자적 소행인가, 아니면 도움을 준 배후국이 있는가. 물론 방점은 후자에 찍혀 있다. 그리고 배후국으로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목됐다. 물론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결정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결정적 증거로 거론돼 온 게 있다. 이른바 ‘사라진 28쪽’이다. 9·11을 조사한 미국 의회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가운데 공개되지 않은 부분을 말한다. 800쪽이 넘는 보고서 가운데 비밀에 부쳐진 분량이 28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어 단어로 7200개쯤 된다고 한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보 총책임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에게 공개 여부.. 더보기 [편집실에서39]유권자 혁명은 계속돼야 한다(2016.05.03ㅣ주간경향 1174호)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다 보면 곳곳에서 당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총선 이후 흔한 풍경이다. 흘끗 쳐다보며 총총걸음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손을 들어 화답하거나 미소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당선자에게 달려가 악수를 청하는 적극 지지자들도 눈에 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승패를 떠나 입후보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박수 받을 이들은 따로 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과 야권 혁신에 대한 열망 표출이라는 절묘한 결과를 만든 유권자들이다. 이번 총선은 한마디로 ‘유권자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국민 대다수는 ‘여소야대’ 구도를 예상하지 못했다.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눈살을 .. 더보기 [편집실에서38]갈아엎는 4월(2016.04.26ㅣ주간경향 1173호) 붉은색, 푸른색, 녹색, 노란색, 회색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해진 지도는 아름답다. 마치 봄꽃이 만연한 봄 산을 보는 것 같다. 다섯 색깔의 조화로 이 땅에 상서로운 기운이 넘쳤으면 하는 상념에 젖어 형형색색의 20대 총선 정당별 의석 확보 지도를 보는데,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언제부터 이 아름다운 4월에 총선이 치러졌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17대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그 이상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찾아 보니 20년 전 15대 총선 때부터였다. 13대 때도 4월에 치러졌으나 15대 때부터 4월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4월은 1996년부터 4년마다 ‘총선의 달’인 셈이다. 우리에게 4월은 총선의 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원초적으로 4월은 ‘잔인한 달’이자 ‘저항의 달’이다. 잔인한 달의 이미지는 학.. 더보기 [편집실에서37]한국의‘존 도’를 기다리며(2016.04.19ㅣ주간경향 1172호) 꼭 3년 전이었다. 2013년 4월 3일,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조세회피처 폭로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맨제도 등 유명 조세회피처에 있는 유령회사 12만여곳과 170여개국의 정치인·기업인·유명인 등 약 13만명의 탈세 및 돈세탁 실태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걸까.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뒤인 지난 4월 3일, 2차 조세회피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가 폭로됐다. 이번 폭로 주체도 ICIJ다. 공개 자료는 3년 전보다 10배나 많은 1150만건이다. 200여곳 이상의 국가 및 지역이 관련된 21만4000여개의 페이퍼컴퍼니 정보를 담고 있다. ICIJ의 수고가 없었더라면 각국 지도자를 포함한 유명인들의 조세회피 실체는 드러나지.. 더보기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