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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편집실에서26]용서 아닌 책임을 추궁해야 할 때(2016.01.19ㅣ주간경향 1160호)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이에게 찾아와주시고, 그 많은 죄를 회개하도록 하고 그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자식을 잃은 엄마는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 면회를 갔다가 하나님에게 죄를 용서 받았다며 편안하게 말하는 가해자를 보며 몸을 떨고 돌아서 나온다. 그러고는 절규한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를 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이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이 평화롭다는데…, 이미 하나님이 용서를 하셨다는데 어떻게 내가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어떻게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그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용서 받고 구원을 받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한·일 위안부.. 더보기
[편집실에서25]10억엔이란다(2016.01.12ㅣ주간경향 1159호) 시인 곽재구는 1960~70년대에 만연했던 일본인의 한국 기생관광 모습과 감상을 시 ‘유곡나루’에서 이렇게 그렸다. ‘육만엔이란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버스 타고/ 부산 거쳐 순천 지나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 아이스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사일 풀코스에 육만엔이란다./…/ 육만엔이란다, 낚시대 접고 고무장화 벗고/ 순천 특급호텔 사우나에서 몸 풀고 나면/ 긴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서비스 볼 만한데/ 나이 예순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아이스박스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맑은 물 값이 육만엔이란다.’ 3박4일 풀코스 6만엔. 어디 섬진강과 순천 일대에서만 그랬을까. 외화벌이 목적으로 일본인 관광을 장려한 게 정부였으니, 3박4일 풀코스 .. 더보기
[편집실에서24]2016년,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2016.01.05ㅣ주간경향 1158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이름만 들으면 1980년대 ‘헤이’ ‘나탈리’라는 노래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헷갈릴 수 있겠다. 세련된 훈남 스타일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는 달리 그는 말총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새가 특징이다. 외신을 보면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다. 가수는 아니지만 최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오랜 긴축으로 실의에 빠진 스페인 서민들에게 희망가를 불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창당 1년 11개월 만에 치러진 첫 총선에서 제3당이 되는 역사를 썼다. 포데모스는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는 말 그대로 해냈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의 힘은 어디에서 .. 더보기
[편집실에서23]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2015.12.29ㅣ주간경향 1157호) 살풍경한 2015년 세밑에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듣는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 아 대한민국, 아아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아아 대한민국….”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정태춘의 목소리가 칼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1990년부터 25년간 듣고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노랫말 속의 풍경이 현재에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25년 전 정태춘이 부른 노래 속의 대한민국과 결코 다르지 않다. 25년 전 대한민국은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로 넘쳤다.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 더보기
[편집실에서22]타이밍의 역풍(2015.12.22ㅣ주간경향 1156호)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쉽게 말하면 “그 시간에 거기 있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뜻이다. 피해자는 “재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는다. 이 표현이 떠오른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다. 하나는 가 95년 만에 처음으로 1면에 사설을 실었다는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다. ‘전염병 같은 총기 확산’이라는 제목의 지난 5일자 1면 사설은 총기규제에 무책임한 정치권과 무관심한 유권자들을 질타하며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덕적으로 분노할 일이며 국가의 치욕이다.” “총기 확산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더보기
[편집실에서21]두 딸 이야기(2015.12.15ㅣ주간경향 1155호) 두 딸이 있다. 한 명은 갓 태어났고, 한 명은 환갑을 훌쩍 넘겼다. 두 딸 모두 아버지가 유명하다는 점이 닮았다. 덕분에 갓난아기의 앞날은 창창하고, 다른 한 명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태평양 양편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큼 두 딸의 차이는 크다. 가장 큰 것은 두 딸을 바라보는 내 감정이다. 한 명에게서는 희망과 감동이, 다른 한 명에게서는 절망과 분노가 느껴진다. 갓난아기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세상에 나왔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출생 선물은 ‘통 큰 기부’였다. 기부액은 무려 약 52조원이나 된다. 그가 직접 받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자산의 99%를 일생 동안 기부하겠다고 온 세계에 약속했다. 선물에는 아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담겨 .. 더보기
[편집실에서20]복면 벗기기(2015.12.08ㅣ주간경향 1154호)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과 눈웃음 짓는 듯한 눈매, 그리고 양쪽 끝이 위로 치솟은 콧수염과 세로로 한 줄로 난 턱수염. 가만히 보면 전체적으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 얼굴의 주인공은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410년 전에 영국 국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실존 인물이다. 그 후 영국에서는 국왕의 무사와 암살음모 재발 방지를 위해 그의 상을 태우는 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최근 ‘11·13 파리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IS)에 사이버 전쟁을 선포한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 덕분에 가이 포크스가 다시 유명세를 탔다. 가이 포크스가 축제 속 인물에서 현대적 의미로 되살아난 계기는 약 10년 전쯤 상영된 영화 덕분이다. 영화의 주인공 브이가 이 가면을 쓰면서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이다. .. 더보기
[편집실에서19]무엇이 잘못됐을까(2015.12.01ㅣ주간경향 1153호 ) 어느 날 갑자기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들 배경에 청·백·적색의 프랑스 국기가 등장했다. 프랑스 국기는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다. 프랑스 국기의 삼색은 각각 자유·평등·박애를 의미한다. 왕정 철폐와 시민국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프랑스 혁명 정신이 담겨 있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도 경기장과 의회 등에서 울려퍼졌다. 모두 ‘11·13 파리 테러’ 이후의 풍경들이다. 피로써 쟁취한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가치를 공격한 데 대한 분노이자, 희생자를 기리고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연대감의 표시다. 14년 전에도 그랬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심장부가 알카에다의 여객기 테러로 공격당했을 때 전 세계인은 한마음으로 애도하고 연대를 표시했다. 14년이 지난 지금, .. 더보기
[편집실에서18]정치에 속고 자본에 털리고(2015.11.24ㅣ주간경향 1152호) 첫머리는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왕이 말한다. “선생께서는 천리를 멀다 않고 오셨는데, 분명히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겠지요?” 맹자가 답한다. “왕께서는 어찌 꼭 이로움을 말하십니까(王何必曰利). 오로지 어짊과 의로움이 있을 따름입니다(亦有仁義而已矣).” 맹자의 말은 이어진다. 요약하면 왕이 이익을 추구하면 대부와 백성들도 차례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이(利)는 사익이고, 의(義)는 공익이다. 군주는 힘에 의한 패도정치 대신 왕도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게 맹자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2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왕도정치가 아닌 패도정치가 판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정치권을 보자. 청와대와 정부는 .. 더보기
[편집실에서17]0.1%가 99.9%를 깔보는 나라(2015.11.17ㅣ주간경향 1151호)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세력이 쏟아내고 있는 망발 가운데 파렴치의 극치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국정화 반대=비국민’ 발언을 해 검찰에 고발된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꼽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3일 대국민 담화에서 “(전체 학교의)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고 한 황교안 총리의 언급에 더 눈길이 간다. 황 총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당위성을 설명하려고 검정 교과서 체제가 다양성을 훼손한다는 근거로 과거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을 예로 들다가 예의 망발을 했다. “전국 2300여개 고등학교 중 세 학교만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고, 나머지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 교학사 교과서만 정상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이 말은 바꿔 말하면 0.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