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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45]스크린도어 안팎과 그 사이 어디에도 없는 자들(2016.06.14ㅣ주간경향 1180호) 지하철역에 처음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을 때 ‘그 기준이 뭘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하철역 내 사고를 계기로 스크린도어가 설치됐으니 안전이 최우선 고려사항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용객이 많은 역이 0순위였을 것이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불온한 생각이 스멀스멀 일었다. 혹시 지역 차별은 없을까. 힘 없는 동네 역이 힘 센 동네 역에 밀리는 상황 말이다. 스크린도어에 붙은 광고판을 보면 돈 거래가 설치 순위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억을 더 더듬어 보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에는 ‘안전선’이라는 게 있었다. 선로에서 조금 떨어진 플랫폼에 그어진 노란색 선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안전선 안과 밖이 헷갈린 것이다. 열차가 도착할 때면 방송이 흘러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4]‘팔할’의 도(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 왜 ‘팔할’이었을까. 학창 시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자화상’ 시구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를 읽고 든 의문이었다. 칠할도 구할도 아닌 팔할. 성찰의 근거가 뭔지는 모르지만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미당 식으로 풀면 노력이 구할구푼이다.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았다. 18세기 문인 이덕무(1741~1793)의 글을 소개한 (2015, 북드라망)이었다. 서얼 출신의 이덕무는 스스로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를 만큼 책을 좋아했다. 하지만 너무나 가난했다.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는 이덕무의 방이 작음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에 방을 넓히라고 .. 더보기
[편집실에서43]한강이 온다 한들(2016.05.31ㅣ주간경향 1178호)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점을 찾았다. 그의 책 세 권을 샀다. . 평소 유행 대열에 끼는 걸 꺼리는 나로서는 일탈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끌었는지 모르지만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아마도 호기심에 따른 충동이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두어 달 전 그가 이 상 후보 13명에 뽑히고 한 달 전 최종후보 6명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비록 관심은 갔지만 책을 사야겠다는 간절함은 없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와 를 내리 읽었다. 완전히 한강에 빠져버렸다. 그의 소설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너무나 한국적인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행동했을 법하다. 축하할 일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올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