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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아침을열며13/끝나지 않은 오키나와의 비극 지난 11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본섬 남쪽 끝 해안가에 있는 평화기원자료관을 찾았다. 오키나와 현정부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유일한 지상전이 벌어진 오키나와전쟁의 교훈과 영구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자료관을 둘러보다 제4전시실 한쪽 벽에 붙은 글에 눈길이 갔다. 일본어로 쓴 길지 않은 글이었다. 한국어로 된 자료관 안내서에는 이렇게 번역돼 있었다. “오키나와전의 실상을 접할 때마다 전쟁이라는 것처럼 잔인하고 이렇게 오욕투성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생한 체험 앞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전쟁을 긍정하고 미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히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들 인간이 아닐까요. 전후 이래 우리들은 .. 더보기
아침을열며12/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이집트 북동부 수에즈 운하 인근 도시인 이스마일리아. 지난 16일 한 무리의 주민들이 평화적인 거리시위를 벌이며 도로 한복판에 막아선 탱크들을 향해 행진한다. 이윽고 들리는 총성들, 그리고 주춤하는 시위대. 하지만 흰 모자를 쓴 한 남성은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꿋꿋하게 탱크들 쪽으로 걸어간다. 멈춰선 그는 탱크와 당당히 맞선다. 두 팔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있다. 10초쯤 지났을까. 총성과 함께 그는 고꾸라진다. 총탄이 그의 복부를 관통한 것이다. 비록 그의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보 상공으로 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도로 위에서 뒹굴었고, 주민 몇 명이 그를 향해 달려간다. 지난 19일자 경향신문 1면에 실린 3장의 연속.. 더보기
아침을열며11/본말 전도된 스노든 사건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불법 감시행위를 폭로한 지 한달 보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본말 전도’의 전형적인 사례를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스노든 사건은 ‘개인자유 대 국가안보’라는, 오랜 논쟁거리에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스노든이 폭로를 통해 강조하고자 한 본질은 국가안보를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생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스스로 내부고발자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가 고발한 본질에 대한 논의는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 그 자리는 스노든 송환과 정치적 망명을 둘러싼 미국과 반미 국가들의 줄다리기 같은 곁가지가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23일이면 스노든은 공항 환승구역에 갇혀 영화 의 주인공처럼 웃지 못할 희극의 주인공 신세로 전락한 지 한달이 된다... 더보기
아침을열며10/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의 거짓말 지난 3월 미국 상원 청문회장. 민주당의 론 와이든 상원의원(오리건주)과 미 정보당국의 총책임자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의 질의문답이 이어졌다. “국가안보국(NSA)은 어떤 형태라도 미국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지 않나요?”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다고요?” “의도적으로는 하지 않습니다.” 같은 달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장. 민주당 행크 존슨 하원의원(조지아주)은 키 알렉산더 NSA 국장을 5분여 동안 추궁했다. “NSA는 미국 시민들의 e메일을 일상적으로 가로채고 있나요?” “아닙니다.” “NSA는 미국인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가로채나요?” “아닙니다.” “문자메시지는요?” “아닙니다.” “은행 거래 기록은요?” “아닙니다.” 지난 6일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가 미국인들을 불법적으.. 더보기
아침을열며9/'사바르 비극’이 던지는 질문 기자 초년병 시절인 1992년 어느 봄날로 기억한다. 따사로운 봄 햇살에 밀려드는 졸음과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동대문구 창신동에 있는 봉제공장에서 소녀가장을 만나보라는 지시였다. 희미한 조명 아래 실먼지가 날리던 좁은 주택 안 공장에서 조모양이 사장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모양은 당시 16살이었다. 동생과 남동생을 돌보기 위해 하루 종일 그곳에서 일했다. 일에 지친 듯, 삶에 대한 희망을 잃은 듯, 그의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자리한 두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과 자괴감 탓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들과의 만남은 아직까지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성인이 된 그들은 .. 더보기
아침을열며8/내부 고발자의 힘 조찬제 국제부장 한 건의 폭로가 다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지난 3일(현지시간) 웹사이트에 띄운, 조세 피난처에 관한 탐사보도다. 협회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케이맨군도 등 유명 조세 피난처에 있는 유령회사 12만2000여개와 170여개국의 정치인·기업인·재력가 등 약 13만명이 차명 임원이나 익명 소유 방식으로 유령회사를 차리거나 거래한 사실을 공개했다. 탈세와 돈세탁 등 불법·탈법의 온상으로 불리는 조세 피난처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1차로 명단이 공개된 아제르바이잔, 러시아, 캐나다, 파키스탄, 필리핀, 태국, 몽골 등의 해당자들은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해당국에서는 탈세와 돈세탁 등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를 .. 더보기
아침을열며7/‘제로 다크 서티’와 ‘아르고’ 조찬제 국제부장 일주일 전에 끝난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의 하이라이트는 작품상 발표였다. 명배우 잭 니컬슨이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조연이었다. 주연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였다. 니컬슨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백악관에서 파티 중이던 오바마가 무대 뒤 대형 화면에 등장했다. “올해 작품상 발표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문을 연 오바마는 “9편의 영화는 우리를 웃게도 울게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주먹을 조금 더 힘껏 쥐게 한다. 그들은 사랑이 모든 차별을 견디게 하고 우리의 삶을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변화시키고, 만약 우리가 열심히 버텨 싸우고 용기를 찾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것이라는 점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진행을 넘겨받은 니컬슨이 후보작 9편을 소개하자 작품상 이름이 든 봉투가 .. 더보기
아침을열며6/지옥문을 연 올랑드 조찬제 국제부장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말리에 대한 군사개입을 개시하자 이슬람 무장세력은 그가 “지옥문을 열었다”고 했다. 올랑드는 그 말에 콧방귀를 뀌었을 법하다. 하지만 말리 개입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알제리 인질극은 그가 지옥문을 열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인질극은 사흘 만에 끝났지만 이는 불길한 예언의 서막일지도 모른다. 올랑드의 말리 작전은 겨우 문턱을 넘어섰을 뿐이다. 그 문 뒤엔 알제리 인질극보다 더 깊은 수렁이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올랑드의 말리 개입은 결말을 알고도 헤어나지 못하는 숙명의 게임과 같다. 자신의 운명은 물론 국민의 꿈마저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게임의 법칙이다. 올랑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아프리카는 다시 한번 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올랑드는 왜 지옥.. 더보기
아침을열며5/총기 규제, 이제는 행동에 옮길 때 조찬제 국제부장 지난 토요일 오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던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참사로 무고한 아이 20명과 교직원 6명 등 26명이 숨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보니 숨진 아이들은 모두 6~7세 철부지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을 졸지에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 가족은 버지니아주에서 1년 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한국계 조승희가 저지른 미국 최악의 총기 참사인 2007년 버지니아텍 사고가 있은 직후다. 기우에 그치긴 했지만 같은 성씨라는 이유만으로도 불안해했다. 이 때문에 총기 참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무 탈없이 귀국할 수 있었음을 감사.. 더보기
아침을열며4/오바마·시진핑은 중산층에 응답하라 조찬제 국제부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최고 지도자 등극을 약 1주일 간격으로 보는 일은 동시대인으로서는 드문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오바마와 그 자리를 넘보는 시진핑 간 대결은 세기의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이 펼치는 정책과 지도력에 따라 세계는 좌지우지될 것이 뻔하다. 두 사람이 만들어갈 세계가 갈등의 장이 될지, 화해와 협력의 장이 될지는 엄밀히 말하면 국제정치학자들의 주된 관심 영역이다. 일반 미국인이나 중국 인민들이야 자신들의 삶을 풍요롭게만 해준다면 어떻게 하든 만족할 것이다. 오바마와 시진핑 두 사람에게서 공통분모를 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두 사람 앞에 놓인 과제와 관련한 주제어는 찾을 수 있다. 바로 ‘중산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