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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아침을열며3/양심수 브래들리 매닝을 위하여 조찬제 국제부장 1991년 ‘유서대필사건’ 희생자 강기훈씨의 근황 보도(경향신문 9월29일자 1·9·10면)를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다. 누명을 쓰고 3년 옥고를 치른 것도 억울한데 명예 회복을 위해 학수고대하는 대법원의 재심결정 절차가 신청 접수 3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다니, 전문 법률지식은 없지만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국외자의 심경이 이렇다면 당사자는 오죽하랴, 이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한 외국인이 떠올랐다. 비리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미국 기밀자료를 제공한 브래들리 매닝이었다. 위키리크스는 미 육군 정보분석병으로 이라크에 근무하던 매닝 덕분에 2010년 미 기밀을 잇달아 폭로해 세계를 뒤흔들었다. 한동안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와 함께 인구에 회자되던 그의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언.. 더보기
아침을열며2/CIA-알카에다 커넥션의 부활 조찬제 국제부장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7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어느 누구라도 시리아 국민들의 불행을 부추기는 일을 시도하거나 대리인 또는 테러리스트를 보낼 경우 참지 않겠다.” 클린턴 장관은 특정 국가나 테러조직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클린턴의 경고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지는 전후맥락을 살펴보면 드러난다. 미국 스스로 시리아 사태에서 대리인과 테러리스트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스스로 최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이다. 알카에다의 시리아 사태 개입설은 오래전부터 나돌았지만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말 “알카에다 산하 3개 조직이 시리아 혁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분명해졌다. 이후 다른 미국 언론들도 시리아에서.. 더보기
아침을열며1/미국의 '그것 논쟁'과 들러리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도중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국가와 기업가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기업가 정신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발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공했다. 오바마는 열흘 전인 지난 13일 버지니아주에서 유세를 했다. 그 자리에서 성공한 기업가와 그들의 성공 비결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국가와 국민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공화당과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 연설 가운데 한 대목만 주목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두 문장으로 이뤄진 구절이다. “만약 당신이 기업을 운영한다면 당신이 그것을 이룬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기업가는 물론 공화당은 발끈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특별한 개인의 놀라운 성과를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전미자영업자연맹은 “엄청난 개인의 .. 더보기
마감후29/오바마의 짐 '갈라진 미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떠오른 때가 2004년이다. 당시 마흔세 살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오바마는 그해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자로 섰다. “진보 미국도, 보수 미국도 없다. 미합중국만 있다”는 그의 명연설은 민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통합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오바마는 그 여세를 몰아 그해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고 4년 뒤 백악관에 입성했다. 오바마의 과거를 새삼 꺼낸 것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그가 미국 사회 갈등의 주범으로 떠올랐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지난 4일 ‘2012년 미국인의 가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의 역할과 개인의 종교취향, 정치참여에 이르기까지 15개 부문.. 더보기
마감후28/죽은 빈 라덴에 기댄 오바마 지난해 5월 미국 특수부대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을 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침착했다. 밤 11시가 넘어 그 사실을 발표하기 위해 백악관에서 TV카메라 앞에 선 그는 감정을 억눌렀다. “오늘 밤은 9·11 당시 팽배했던 단합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나흘 뒤 9·11 현장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을 땐 침묵의 헌화를 했다. 방송 인터뷰에서는 “축하 행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빈 라덴 시신 사진 공개 요구와 사망을 둘러싼 언론의 끝없는 의혹 제기에도 침묵했지만 이것이 미국의 공적 1호를 제거한 오바마의 허물이 될 수는 없었다. 한데 ‘죽은’ 빈 라덴이 1년 만에 되살아났다. 그를 되살린 이는 제거 명령을 내린 오바마다. 오바마가 1년 만에 빈 라덴을 되살린 이유는 뻔하다. 재.. 더보기
마감후27/이란 핵 논란과 랍비의 지혜 이쯤 되면 필시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말을 무시하듯 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그가 말을 바꿔도 마냥 믿기만 한다. 오히려 이 일에 개입해 편들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압박마저 느낀다. 이란 핵개발을 둘러싼 이스라엘 얘기다. 자고 일어나면 이란 핵개발 관련 뉴스가 외신을 뒤덮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물론 공화당 대권후보들까지 한목소리로 이란을 비난한다. 이스라엘은 한술 더 뜬다. 오는 7월까지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겠다며 미국마저 협박한다.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증거도 없고, 이란 핵무기 개발 예측시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말바꾸기가 이어지는데도 왜 사람들은 귀를 쫑그릴까. 이스라엘이 이란 핵무기 개발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1998년 .. 더보기
마감후26/보스니아 교훈과 시리아 사태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의 감독 데뷔작 의 배경은 보스니아 전쟁(1992~95)이다. 전쟁 전 사랑에 빠진 무슬림 여성과 세르비아 남성이 전쟁 때 포로와 지휘관으로 만나는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를 그렸다. 지난 13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서 이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졸리는 시사회가 끝난 뒤 자신의 영화가 시리아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는 국제사회의 ‘웨이크업 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해온 졸리에게는 보스니아 전쟁의 악몽이 시리아 참상과 겹쳐졌을 법하다. 1년 가까이 진행된 정부군의 유혈진압으로 국민 5500여명이 사망했다. 지금도 홈스에서는 정부군의 무차별 포격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죽음과 굶주림의 공포 속에서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제사.. 더보기
마감후25/호르무즈 해협과 돌고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다. 미국이 핵개발 의혹 때문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등 경제제재를 취한 데 따른 조치다. 미국은 이란이 동원할 수 있는 무기로 기뢰, 무장 고속정, 대전함미사일 등을 꼽는다. 이 가운데 기뢰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러나 묘책이 있다. 바로 ‘돌고래 부대’의 투입이다. 바레인에 있는 미 제5함대 사령관을 지낸 팀 키팅 전 제독은 미 공영 NPR방송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돌고래는 해저 물질을 탐지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돌고래의 음파 탐지 능력은 놀랍다. 110m 떨어진 곳에 있는 크기 8㎝의 물체도 탐지한다. 눈을 가리고도 25센트와 10센트짜리 동전을 구분할 정도다. 특히 자연물과 인공물을 구별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미 해군은 돌고래의 이런 특성.. 더보기
마감후24/역사를 바꾼 분노와 저항 오랫동안 국제뉴스를 다루면서 2011년만큼 ‘격동의 해’라는 말을 실감해본 적이 없다. 새해 벽두부터 세밑까지 역사적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워낙 큰 사건들이 많아 되돌아보는 데 숨이 막히고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사건을 좇는 데만 급급해 세계사적인 변화의 큰 흐름을 제대로 읽고 짚어내지 못한 것이 아닌지 회한도 든다. 그럼에도 올 한 해의 의미를 정리하자면 ‘분노와 저항의 해’라고 부르고 싶다. 거리로 나선 수많은 사람의 분노와 저항은 인간정신과 시대정신의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시사주간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the protester)’를 선정한 데 공감한다. 특히 리처드 스텐절 타임 편집장이 선정 이유로 밝힌 글 가운데 “시위의 물결은 소셜네트워크보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 더보기
마감후23/지금은 희망을 점령할 때다 1965년 3월21일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에서 역사적인 행진이 시작됐다. 흑인의 투표권 쟁취를 위한 ‘셀마~몽고메리 행진’이었다. 미 전역에서 참여한 8000여명은 나흘간 약 87㎞를 걸어 25일 목적지인 몽고메리의 주의회 앞에 도착했다. 이 행진은 두 차례의 좌절 끝에 성취한 것이라 의미가 각별했다. 3월7일 첫 행진은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릴 만큼 유혈이 낭자했다. 주 경찰은 셀마의 에드먼드 페티스 다리 위에서 행진하던 약 600명의 흑인을 향해 곤봉과 채찍 세례를 퍼부었다. 이 사건은 다음날 저명한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으며, 역사는 바뀌었다. 킹 목사는 3월9일 1000여명을 이끌고 몽고메리로 향했다. 이들은 다시 주 경찰에 막혔다. 그리고 ‘피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