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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24]2016년,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2016.01.05ㅣ주간경향 1158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이름만 들으면 1980년대 ‘헤이’ ‘나탈리’라는 노래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페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헷갈릴 수 있겠다. 세련된 훈남 스타일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는 달리 그는 말총머리에 허름한 옷차림새가 특징이다. 외신을 보면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다. 가수는 아니지만 최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못지 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오랜 긴축으로 실의에 빠진 스페인 서민들에게 희망가를 불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신생 정당 ‘포데모스’가 창당 1년 11개월 만에 치러진 첫 총선에서 제3당이 되는 역사를 썼다. 포데모스는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는 말 그대로 해냈다. 이글레시아스와 포데모스의 힘은 어디에서 .. 더보기
[편집실에서23]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2015.12.29ㅣ주간경향 1157호) 살풍경한 2015년 세밑에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을 듣는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 아 대한민국, 아아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아아 대한민국….”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정태춘의 목소리가 칼바람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1990년부터 25년간 듣고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노랫말 속의 풍경이 현재에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25년 전 정태춘이 부른 노래 속의 대한민국과 결코 다르지 않다. 25년 전 대한민국은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과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로 넘쳤다.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 더보기
[편집실에서22]타이밍의 역풍(2015.12.22ㅣ주간경향 1156호) 미국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쉽게 말하면 “그 시간에 거기 있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뜻이다. 피해자는 “재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고,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는다. 이 표현이 떠오른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다. 하나는 가 95년 만에 처음으로 1면에 사설을 실었다는 뉴스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다. ‘전염병 같은 총기 확산’이라는 제목의 지난 5일자 1면 사설은 총기규제에 무책임한 정치권과 무관심한 유권자들을 질타하며 규제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덕적으로 분노할 일이며 국가의 치욕이다.” “총기 확산을 통해 이득을 챙기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