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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가 쓴 칼럼

[편집국에서16] 트럼프와 배넌의 결합, 한번으로 족하다(19062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브 배넌을 여전히 필요로 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배넌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킨 일등공신이다. 이 질문이 떠오른 건 두 계기 때문이다. 하나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있었던 트럼프의 재선 출정식이다. 더 직접적인 건 일주일 전 영국 신문 가디언 보도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배넌을 재선 캠프에 기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는 야후뉴스 기자인 알렉산더 나자리언이 트럼프 재선 출정식 날에 맞춰 낸 의 내용을 미리 입수한 것에 바탕을 뒀다. 나자리언은 지난 2월 트럼프를 인터뷰했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지난 6개월 동안 배넌을 4~5차례 봤다”면서 “지금 배넌만큼 나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4개월 전 이야기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배넌과.. 더보기
[편집국에서15]먼로 독트린은 살아 있다(190517) "1800년 이후 미군은 수천 번 중남미에 개입했으며, 수십 차례 점령했다.” 미국 템플대 중남미 전문 역사학자 앨런 맥퍼슨 교수의 주장이다. 미 대외정책 비판가이자 작가인 윌리엄 블룸은 1995년 쓴 에서 1945년 이후 미국이 ‘정권 교체’를 시도한 경우가 55차례 있었다고 했다. 미 여성 평화주의 단체 ‘코드핑크’ 공동설립자 미디아 벤저민은 그 후 13차례 더 있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권 교체 시도는 적어도 68건이나 된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중남미 국가는 얼마나 될까. 에콰도르, 브라질,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그레나다, 수리남, 니카라과,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등 19개국이.. 더보기
[편집국에서14]우리가 이들을 외면한다면(190412) 한 달 전 세계여성의날(3월8일) 때 일이다. 여성의 지위와 권리 향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에 울려퍼질 때 미국에서는 한 성전환 여성이 투옥됐다. 그는 한때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와 국무부 기밀문서를 언론에 공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유명인사였다. 바로 첼시 매닝이다. 그 일로 매닝은 35년형을 선고받았다. 7년반 넘게 투옥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퇴임 이틀 전 감형돼 4개월 후 석방됐다. 자유의 몸이 된 지 1년11개월 만의 재투옥이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다수의 언론과 시민들이 침묵한 탓이다. 투옥 죄목은 법정모독. 그는 자신의 자료를 공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조사차 제4연방항소법원 대배심에 출석했다. 그는 증언을 거부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대배.. 더보기
[편집국에서13] 김정은, 워싱턴 갈까(190308) 1987년 12월7일, 옛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고르비)가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옛 소련 지도자로서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레이건과의 세 번째 회담이기도 했다. INF 조약 서명은 군축과 냉전 종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이트는 다른 데 있었다. 마지막 날 미국인으로부터 받은 환대였다. 백악관에서 차를 타고 가던 고르비는 차를 세우고 군중들에게 다가갔다. 백악관 산책으로 불리는 고르비의 돌발행동에 경호원들은 경악했지만 미국은 고르비 열풍에 사로잡혔다. 고르비 인기는 회담 닷새 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증명됐다. 고르비에게 우호적 인상을 받은 미국인은 65%였다. 61%를 기록한 레이건보다 더 많았.. 더보기
[편집국에서12]트럼프는 왜 '스타워스'를 쏘아올렸을까(190125)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도널드 트럼프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역대 1, 2위 고령 대통령이다. 또 워싱턴 정치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특히 트럼프는 선출직 경험이 없는 첫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돼서도 옛 직업의 엔터테인먼트 능력을 활용한다는 점도 같다. 하나 더 든다면 두 사람 모두 핵전쟁 두려움에 사로잡혀왔다는 점일 게다. 레이건이 옛 소련과의 핵전쟁 공포에 시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게 ‘스타워스’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이다. ‘우주에 탐지와 요격을 위한 센서와 무기를 배치해 적의 미사일을 발사 후 상승단계에서 파괴한다’는 계획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기술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레이.. 더보기
[편집국에서11]연대의 힘, ‘나디에’에서 ‘캐러밴’으로(181214) 마리아를 알게 된 건 멕시코 다큐멘터리 (2005)를 통해서다. 2006년 여름 EBS가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에서 소개했으니 벌써 12년이 지났다. 입술을 깨문 채 애써 담담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얼굴에는 불안과 초조, 두려움, 막막함, 절망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연이 표정 뒤에 감춰져 있는 걸까. ‘나디에’는 스페인어로 ‘하찮은 사람’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뜻한다. 다큐에서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중미 3국에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민자를 가리킨다. 마리아는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제작진이 마리아를 만난 곳은 멕시코 남동부 베라크루스주 내륙 도시 오리자바에 있는 불.. 더보기
[편집국에서10] 고르비의 선택, 김정은의 선택(181102) 냉전 종식기 미·소 정상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고르비)는 모두 다섯 차례 만났다. 1985년 11월19~21일 스위스 제네바 정상회담이 시작이었다. 강경 냉전 전사 이미지의 레이건과 젊은 새 지도자 고르비의 첫 만남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컸던 만큼 별 성과는 없었다. 가시적인 성과라면 고르비의 워싱턴 방문 합의 정도였다. 첫발은 내디뎠지만 후속 회담은 쉽지 않았다. 두 정상이 1986년 10월11~12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만나기까지 약 11개월이 걸렸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은 당시 실패한 회담이었지만 훗날 냉전 종식의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군축의 가시적인 첫 성과인 중거리핵전력(INF)협정이 체결된 3차 워싱턴 정상회담(1987년 12월)의 징검다리가 됐기 때문이다. 군축이라는 거대.. 더보기
[편집국에서9] 존 매케인은 영웅인가(180914) 지난 1일 치러진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의 장례식은 미국 내에서의 그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시신이 담긴 관은 의회의사당 중앙홀에 안치됐다. 미국 역사상 30명만이 누린 특권이자 명예였다.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은 국장을 방불케 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앨 고어·딕 체니 전 부통령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참모와 각료 등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말 그대로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적과 동지가 따로 없었다. 한 언론인은 ‘레지스탕스 모임’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이야말로 미국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지도자라는 의미일 터이다. 각계 인사들이 쏟아낸 헌사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애국자, 영웅, 자유의 수호자, 평화의 전사…. 지나치지 않나 .. 더보기
[편집국에서8]어느 '기후변화 선지자'의 회한(180810)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기후변화에도 의미 있는 해였다. 온실효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같은 용어가 그해 본격적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23일, 기후변화의 새 역사가 쓰였다. 40대 후반의 한 과학자가 그날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역사적인 증언을 했다. “지구온난화가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99% 확신할 수 있다.” 그의 증언은 이튿날 ‘지구온난화는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기후변화가 언론에 처음 대서특필된 순간이었다. 향후 가열되는 기후변화 논쟁의 예고탄이기도 했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훗날 ‘기후변화 선지자’로 불린 미 항공우주국(NASA) 소속 과학자 제임스 핸슨 박사였다. 당시 핸슨 박사가 말한 핵심은 세.. 더보기
[편집국에서7]'‘저주받은 자들의 항해’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180706) 1939년 5월27일 새벽 4시. 대서양 횡단 독일 여객선 세인트루이스호는 2주간의 항해 끝에 목적지인 쿠바 아바나 해안에 도착했다. 탑승객 937명은 항구의 불빛을 보고서야 안도했다. 대부분이 나치의 핍박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이었다. 자유를 향한 희망에 부푼 이들은 짐을 꾸리고 하선 준비를 했다. 배에 올라온 쿠바 관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당시 6살이던 제럴드 그랜스턴은 쿠바 관리들이 외치는 “마냐나, 마냐나” 말만 반복해 들었다고 회고했다. “내일” 또는 “언젠가는”을 뜻하는 낙관적인 이 말은 배반의 단어가 됐다. 6살 소년조차도 이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배의 입항 및 승객의 하선 금지임을. ‘저주받은 자들의 항해’로 불리는 세인트루이스호의 비극은 5월.. 더보기